낮에 햇볕이 나고 바람이 잠자는 틈을타서 밭일을 좀 많이 했다. 상추 모종을 사다 심었는데 모종이 많아서 튜립 밭 사이에도 심었다. 마침 튜립과 튜립 사이가 여분의 땅이 있어서 다행이었다.

교회에서 아는 분이 부추 모종을 주셨기 때문에 이것도 함께 심었다. 밭 근처에 잡초들을 뽑고 뿌리를 떼어내는데 고무장갑이 둔해서 맨 손으로 하다보니 며늘아이가 돈 들여 해준 매니큐어바른 손톱한테 미안하다.

사슴 출현이후 사방으로 울타리를 단단히 쳤기 때문에 이제는 얼씬도 못하지만 지난번 후유증은 계속 이어지고 있다.

튜립을 거의다 사슴에게 빼앗겼지만 남은 것들은 차례로 피어나고 있다. 뿐만 아니라 꽃 가게에서는 볼 수 없는 독특한 색깔들이 많아서 그래도 이게 어디냐고 자위하고 있다. 뭐니뭐니해도 오늘의 주인공은 사슴에게 꽃 대가리 2/3쯤 잘려 나간 놈이 그 남은 1/3의 꽃을 피우고 있다. 절반도 못 남은 목숨을 포기하지 않고 늠름하게 피어 내는 그의 최선을 다함에 박수를 쳐 주었다. 꽃도 이런데 하물려 사람이랴. “왜? 못 산다고 난리야? 죽을 각오를 하고 살아가면 되지. 이 꽃을 보라고.”

꽃 송이 하나씩 사진을 찍어본다. 나름 다들 특색있다. 어느놈은 정말 물감으로 칠 해 놓은 듯 세련된 모습이다.

해걸음 어둑어둑할때까지 밭 일을 하다 들어와 물을 마시는데 내 손톱이 까맣다. 박완서씨의 산문중에 ‘까만손톱’이라는 글이 생각난다. 작가는 흙일을 하다가 급하게 볼일을보러 밖에 나갔는데 버스에 매달려있던 중 자신의 손톱밑이 새까만것을 알고 종일 손을 오그리고 다녔다는 얘기다.

모종할때 뿌리를 하나씩 나누는 작업도 그렇고 손이 닿아야 흙도 보들보들하게 섞여진다. 집을 뺑 둘러 마당이니 마당일은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내 손을 필요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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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 : 11도 맑음 / 영화 ‘Dangerous Method’를 보고있는 중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