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님이 오셔서 우리집에서 점심을 함께했다. 식사 후 형님은 찬송가를 가져오시더니 함께 찬송을 부르자고 제안한다. “그러죠” 형님이 우리가 부르던 찬송가를 이것저것 골라서 반주를하고 나와 둘이 두엣으로 찬송가를 불렀다.

“엘리샤, 난 옛날 찬송가가 좋아요.”

“형님, 나도 그래요.”

형님은 그동안 다니던 서양교회의 적을 옮긴 이유가 그 교회에서 옛날 귀에 익은 찬송가는 안 부르고 요즈음 나온 곡만 부르며 또한 악기 소리가 너무 커서 은혜가 안되고 도리어 마음이 불편했단다.

실은 나도 그렇다. 금요 찬양예배를 다니지만 옛날 찬송가는 거의 없고 새로나온 곡들만 부르는데 때로는 입 다물고 가만히 있기도 한다. 곡도 어설프고 가사도 그렇다. 옛날 찬송가 작곡자들은 자기의 경험을 토대로 가사를 지었기 때문에 찬송 부를 때 작곡자의 마음이 전달되어온다. 때로는 눈물도 흘리거나 감격하여 가슴이 벅차기도 하여 하나님이 바로 내 곁에 있는 듯 하기도 했다. 그러나 요즈음 나온 찬양 가사들에서는 은혜가 별로 느껴지지 않으니 어쩌나.

그래도 시대의 흐름을 막을 수는 없는 것. 교회마다 다 이렇게 변해가니 나이 먹은 사람들은 자연히 이런것에서부터 자연히 도퇴되는 느낌이다. 형님은 “이제 마지막이야.” 하시면서 다른 곡을 반주하고 나는 열심히 따라 찬송을 불렀다. 형님은 그 마지막이라는 소리는 아마도 열 번은 더 하셨을 즈음에 송영을 마지막으로 우리둘의 두엣은 끝이났다.

혼자서 부르면 힘드는데 둘이서 불러서 소리가 모아지고 듣기 좋다며 좋아하신다. 나도 오랫만에 옛날 찬송가를 부르면서 목청을 돋우어 보았다. 그랬다. 나는 엄마 뱃속에서부터 엄마따라 교회를 다녔기 때문에 내 교회제적수는 70년도 넘는다. 찬송가는 안 보고도 4절까지 척척 외우는 것들이 수두룩하지만 요즈음 부르는 찬양들은 어느게 어느것인이 가사를 외우기도 매우 어렵다.

“아이구, 젊은 이들이여 니네들도 늙어봐. 니네들이 내 나이되면 또 무슨 괴상한 찬양을 할련지 누가 알겠남. 그때 나는 이 세상 사람이 아닐수도 있으니 한번쯤 내 생각 해 보렴. ‘아, 그때 엘리샤 권사님이 이렇게 새 찬양곡에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지?’ 하면서 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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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 : 19도 / 12도 / **서희진 시인댁에서 문학회 월례회가 있었다. 이번달 공부준비를 해온 회원의 글을 읽고 함께 얘기를 나누며 매우 유익한 시간을 가졌다. 신입회원 두 명이 들어와 활기찬 분위기였다. ** 내일 저녁에는 연극 로미오와 줄리엣 연습 첫 번째 들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