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배 후 친구와함께 윌로비치를 다녀왔다. 이곳은 내가 빅토리아에 처음 와서 일 년간 살던 곳이기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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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종종 내가 어떤이로부터 피해를 보았다며 툴툴 거릴때가 있다. 나도 살면서 그렇게 느끼고 말 한 것이 어디 한 두 번이었을까?

읽고 있던 이석원 산문집을 마감했는데 이 책 가운데 얘기가 나온다. 작가의 후배 녀석이 처음 만나서 데이트를 막 시작하던 여자가 만난지 며칠 만에 유럽 여행을 한 달간 다녀오겠다고 했단다. 이것은 그녀가 4년동안 일해서 벌은 휴가여서 취소 할 수 없는 것이었다. 후배는 이 여자가 너무 마음에 들었는지 좀더 진지한 데이트를 해 보지 못하고 바로 헤어짐에대해 무척 아쉬워 했다고 한다.

그런데 이 후배가 작가를 찾아와서 자기와 대화 하는 중 그녀로부터 전화가 걸려와 자연스럽게 그들의 대화를 듣게됐는데 그 후배는 그녀에게 빨리 돌아오라고 성화였다고 한다. 통화를 끝낸 후배에게 왜 그렇게 까지 닥달하냐고 물으니 후배는 그 여자가 자기를 좋아하지 않는 것 같다고 말한다. 작가는 그 후배에게 그녀가 너의 투정도 잘 받아주는 것을 보니 싫어하지 않음이 분명하다고 말 해주었단다.

후배는 자신을 좋아하는 대가로 상대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뭔가를 포기 하기를 바라고 있었다. 그것이 사랑의 증명이라고 믿어도 좋을까? 그렇다면 왜 그 증명을 상대방만 해야 하는지? 나의 욕심과 상대의 욕심이 충돌할 때 결국엔 양보하고 이해하는 쪽이 더 사랑하는 거다. 내가 더 사랑하면 안 되는 걸까? 그럼 손해가 되는 걸까? 끝내 자신이 피해자라도 되는 양 서운해하는 후배를 보면서 , 상대로 하여금 미안하다는 생각을 자꾸만 하게 만드는 사람은 피해자가 아니라 차라리 가해자에 가깝다는 생각을 지울수가 없다고 말하고 있다.

나는 이 대목을 읽으면서 무릎을 쳤다. 이것이 바로 내 지나온 날들의 모습이다. 늘 내가 피해자라며 울고 원한을 품고했던, 그래서 남은 것 하나도 없이 아름다웠던 추억까지도 지워버린 바보같은 세월이 아니었나!

사람은 늘 자기 중심으로 생각하고 자기 유리한 쪽으로 생각한다. 어찌 나만 피해자였을까? 내가 남들에게 행했던 가해자의 모습을 뒤 늦게라도 깨닫는 밤이다.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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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지 그리던 것 거의 마감 (Oil on Woods)

양배추 추수함 (7개 경작됨. 하나는 이미 먹었고 하나는 아직 영글고 있는 중)

내일아침 밴쿠버로 떠나는 친구를 위한 아침 상 (친구의 보따리 안에는 노란 자두와 무화과가 듬뿍 들어있다. 신명나는 친구의 얼굴이 참 보기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