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파제 끝자락에 세워진 등대 앞에서 두 여행객이 만났다. 바다 위에서였다. 그녀가 타고 있던 요트는 한껏 느슨해진 초가을 오후 바람을 돛에 품기 위해 애를 쓰고 있었다. 나를 태우고 있던 카타마란(catamaran)은 유연히 마주친 ‘역사적인 순간’을 함께하기 위해 물살을 힘차게 가르던 쌍발엔진을 겨우 진정시킨 채 요트 주변을 맴돌았다. 그녀의 요트는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내가 탄 배는 속도를 줄이기 위해 안간힘을 다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녀 주위엔 전 날 저녁, 해협 초입까지 그녀를 마중하러 나갔던 동료들의 배 여남은 척이 따르고 있었다. 방파제 위엔 그녀를 보러 나온 이들로 발 디딜 틈이 없어 보였다. 마침내 그녀를 실은 요트가 등대 앞에 이르자 여기저기서 요란한 함성과 박수가 터져 나왔다. 주변을 에워싼 크고 작은 배들도 뱃고동을 울려 그녀의 귀환을 축하했다. 해양 소방대원들도 소방선에서 물기둥을 분수처럼 뿜어내며 분위기를 돋우었다. 인류 항해사에 새로운 역사 한페이지가 기록된 순간이었다.

진 소크라테스(Jeanne Socrates). 영국태생의 77살 할머니가 339일만에 지구를 한바퀴 돌아 다시 빅토리아 오그덴 포인트(Ogden Point) 등대 앞으로 돌아왔다. 2019년 9월7일, 오후4시17분 26초. 그녀는 모터엔진도 없이 순전히 바람만을 이용해, 혼자서, 아무런 도움도 없이, 단 하루도 정박하지 않고 쉼없이 달렸다. 바다 한가운데에서 태풍을 만나고, 8미터가 넘는 파도를 헤치며 기다란 돛대의 끝이 바닷물에 닿을 정도로 아슬아슬한 순간도 마주했다. 마지막 입에 넣은 음식은 도착 일주일 전에 먹은 쿠키 한 조각이 전부였다. 

그녀는 이제 전설이 됐다. 혼자서, 정박없이, 외부 도움 없이, 지구를 한 바퀴 항해한 최고령 세일러가 됐다. 남성 세일러 기록이 71살이니, 당분간 깨지기 힘든 기록이 될 듯싶다. 여성으로선 유일한 기록보유자이기도 하다. 그녀는 도착 후 가진 한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인생은 참 고귀한 것”이라며 “당신의 나이가 몇 살이든, 할 수 있을 때 최선을 다하며 살라.”고 말했다. 그녀는 또 생명에 위협을 느끼는 폭풍 속에서도 “곧 지나갈 것이다. 지나간 뒤엔 모든 게 좋아질 것이다.”라는 믿음을 가져야만 했다고 덧붙였다. 항해 중에 장비가 고장이 나고 문제가 생기면 “에둘러가는 길이 있었다.”는 말도 들려줬다. 

그 역사의 한 페이지에서 우연히 그녀와 마주친 나는 고래를 만나러 나갔다가 4시간 만에 돌아오는 길이었다. Whale Watching은 참 색다른 경험이었다. 목적지가 없는 항해, 좌표가 분명치 않은 여행이었던 것이다. 이처럼 모든 것이 불투명한 여행은 처음이었다. 그저 선장이 이끄는 대로, 텅 빈 바다와 섬들 사이를 누비는 배에 몸을 맡겨 두고 있을 뿐이었다. 배는 커서 안전했고, 옆 자리엔 모처럼 같이 나들이를 나선 아내가 앉아 있어 행복했다. 심지어 손에는 따스한 커피가 들려 있어 그지없이 편안한 여행이었다. 

그러나 어디서, 어떤 모습으로 만날 수 있을 지 확신이 없는 목표물을 찾아 나선 여행은 생각보다 무료했다. 가슴을 졸이는 건 선장과 선원들뿐, 구경꾼들의 긴장감은 사실 ‘제로’에 가까웠다. 범고래 가족을 만나 카메라 셔터를 눌러 댔지만 내 노력으로 만들어낸 결과물이 아니어서 그런지 감당할 수 없는 기쁨이 솟아난 것도 아니었다. 오히려 머릿속은 내가 지불한 돈과 그 가치에 대한 복잡한 셈을 하느라 혼란스럽고 불편했다.  

같은 공간, 같은 시각에 어느 누구는 역사의 주인공이 되고, 다른 누군가는 들러리가 된다. 그렇다고 모두가 위대한 모험에 나설 수는 없을 것이다. 소크라테스 여사가 전해준 ‘울림’은 ‘네 자신의, 네 인생의 항해사가 되라’는 것으로 이해했다. 혜민 스님은 최근 펴낸 수필집 <고요할수록 밝아지는 것들>에서 “사람은 각자 인생에서 자기만의 춤을 만들어 추고 있습니다. 실패도 상처도 그 춤의 일부분입니다.”라고 조언한다.

내 배가 아무리 작고 초라해도, 내가 원하는 곳을 향해 직접 돛을 올리고 키를 잡고 가면 되지 않을까 싶다.  내 인생 역시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존엄한 항해’이니까.

<진 소크라테스 여사와 그녀의 요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