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우리 집 사과 중간 Touch u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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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 빅토리아 문학회 문우로부터 빌린 책 ‘돌아오지 않는 시간의 저편 (황금찬)을 보고있다.

1918년 생인 황금찬 시인은 99세를 일기로 작년에 작고했다. 이 책에는 그 시대에 이름있던 시인, 소설가, 화가, 아동 문학가, 음악가, 희곡작가등의 작품및 그들과의 평소 가졌던 이야기들을 수록해 놓았다. 모두가 우리가 다 아는 유명한 분들이다.

이 중에 오장환 시인에 관한 글을 올린다.

소제목이 ‘그렇게 눈을 감았다고 했다.’이다.

<그가 자진 월북하여 잘 살았는가? 아니다. 그는 곧 폐병을 앓는 환자로 고생하다가 허버르스크에 가서 폐수술을 한 얼마 후에 그렇게 눈을 감았다고 전해지고 있다. 이 이야기의 사실성은 확인할 수 없다. 그렇게 들리고 전해지고 있을 뿐이다. 그가 누구인가? 오장환(시인 – 1916~?)이다.

한때 구름같은 시로 명성을 높이기도 했던 저 <나 살던 곳>의 시인 오장환은 충북에서 태어났다. 그리고 그는 보통학교를 안성에서 다녔다. 그때는 모두 점심이란 말도 잊고 살아갈 때 오장환은 집이 무척 잘 살았던지 언제나 명주 바지 저고리를 입고 다녔다. 점심은 일꾼이 가져왔다. 흰 쌀밥에 고기반찬을 먹더라고 박두진이 말했다. 그 때 박두진은 그를 몹시 미워 했다고 했다. 그가 부자여서 그렇게 밉게 보였다는 것이다.

오장환은 재주가 뛰어나 휘문중학교 재학 중인 1933년 11월호에 <목욕간>이란 산문시가 ‘조선문단’에 실리게 되어 문단에 등단됐다. 그의 나이 18세였다. 그 후 그는 여러차례 작품을 발표했으며 시집 ‘성벽’을 출판했다.

해방후 정신이 들떠 있던 때, 어느 날 친구와 같이 요정에가 술을 마시고 나오려고 하는데 한 기생이 그의 친구에게

“저 사람 납치해도 돼?”하는 것이다.

그의 친구는 무심히 “그래 납치해도 돼”했다.

그런데 그 후부터 오장환이 보이지 않는 것이다. 그래도 오늘 내일 나오겠지 했는데 계속 나오지 않았다. 그러자 친구는 기생이 하던 말이 생각났다.

“저 사람 납치해도 돼?” 하던 말이다.

그래서 그가 안 보인지 14일 만에 그의 친구는 그 요정을 찾아가서 그 기생에게 오장환이 어디있냐고 물었더니 “저기 자고 있어요.”라 대답했다. 그가 자는 델 찾아갔더니 글쎄 오장환의 얼굴이 백지장같이 돼 있었다. 기생 일곱명이 윤간을 한 것이다.

그는 곧 병원에 실려갔다. 하나 그는 그 일로 인해 폐가 나빠졌고 그에게는 결핵성 폐병이라는 또 하나의 별칭을 얻게됐다. 그리고 그 후 결국 그 병으로 생을 마친다. (이 이야기는 오장환의 친구가 들려주었다.)

1945년 해방 후 작가 동맹에 가입하여 크게 현학적인 행동을 하다가 1946년 9월 공산당 불법화가 시작되자 이태준, 임화 등과 함께 월북했다.

그리고 오장환은 그렇게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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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자가 여자들한테 윤간 당한다니… 이런일이 정말 일어날 수 있을까? 이 대목을 읽고 줄곳 상상을 해 보지만 내 머리에는 접수가 안된다. 그러게 위험한 곳에는 애초부터 가면 안된다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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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장환시인

날씨 : 9도 / 햇볕나고 아주 좋았음 / 운동 빵빵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