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곧 있으면 한국의 설날이 다가 온다. 한국에서는 벌써 귀성 기차표와 버스표를 사기 위해서 밤새 줄을 서기도, 혹은 컴퓨터 앞에서 광클릭질을 하기도 한다. 내가 나고 자란 고향은 목가적인 곳이 아닌 공업도시이지만 조금만 도심을 벗어나면 금방 전원적인 풍경을 볼 수 있는 곳이다. 지금은 그나마도 개발로 더 많은 아파트와 공장들이 들어서긴 했지만, 그래도 고향은 사방 어디를 둘러봐도 많이 낯설지 않다. 어느 시인은 고향은 어머니의 젖가슴이라고 표현했다. 고향은 막연하게 향수를 일으키는 작용을 한다. 고향과 명절을 떠올리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장면은 엄마가 갈비를 물에 담궈서 핏물을 빼두고 있고, 방 한 구석에서 만두를 빚고 있는 장면이다. 우리 엄마, 이경자 여사는 만두를 꽤나 잘 빚었다. 거의 기술자 수준이었다. 언제부턴가는 만두피를 사서 썼지만 그 전에는 만두피 반죽을 하고 홍두깨나 맥주병으로 떼어낸 반죽을 얄게 펴서 만두를 싸곤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얼마나 손이 많이 가는 작업이었던가? 나도 이곳에 와서 딱 한번 아이들과 재미삼아 만두를 빚어 본 적이 있지만 밤 12시가 다 되어 빚는 작업이 끝난 후로 이제는 그냥 파는 비비고 만두를 선호한다.

나의 부모님은 두분다 무더운 8월에 돌아가셨다. 어머니는 스티브 잡스도 이겨내지 못한 췌장암으로 돌아가셨고, 몇 해 후 아버지도 갑작스레 불의의 사고로 어머니를 따라 가셨다. 어릴적부터 독립적으로 자라서 인가 부모님과 떨어져 지낸 시간이 많아서 인지, 부모님 둘 다 돌아가신게 실감이 나지 않는다. 남편은 오히려 장인, 장모였던 우리 부모님을 나보다 더 자주 떠올리고 우리 밥상에 그 두분을 소환하기도 한다. 남편에게 참 고맙다.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나서 나는 그분들과 더 관계가 돈독해진 거 같다. 예전에 읽은 어느 책에서 가족간의 관계회복은 꼭 그분들의 살아생전에만 이루어 지는 건 아니라고 했다. 그랬다. 나의 부모님은 비록 돌아가셨지만, 또 우리 안에 살아계신거 같다. 이런게 결국 가족인가보다. 윗세대는 떠나지만 다음 세대들은 기억을 꼽십어 전달한다. 아이들에게 계속 사진도 보여주고 아이들이 어렷을 적 추억을 계속 상기 시켜주었더니 아이들은 바로 지난 명절에 보았던 할머니, 할아버지 인양 기억을 더듬기도 했다. 얼마전에는 작은 언니와 통화를 하다가 엄마와 나눴던 작은 에피소드를 이야기하던 중 “엄마가 예전에 그랬는데 언니가 어릴적에 엄마 가게일 많이 도와줘서 너무 고마웠다고 말했었어” 언니는 곧 눈시울이 붉어지더니 말없이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아마 언니는 엄마 살아생전에  그 “고생했다, 고마웠다”라는 말을 듣지 못했을 지도 모른다. 가족들 사이에서도 이런 착한 말 한번 내뱉는게 얼마나 어색했던가. 나 역시 어릴적에 ‘엄마, 아빠 사랑해요. 낳아주시고 키워주셔서 감사합니다.’라는 말을 어버이날 카드에 몇번이나 썼을까 기억도 가물가물한거이 아마도 안써봤을지도 모른다.

명절 이야기를 하나 보니 부모님, 고향이야기가 한 덩어리처럼 엉켜있다. 그러니 부모님 살아 계실때 더 자주 만나고 더 자주 통화하라는 교훈적인 이야기로 마무리 하려는 의도는 아니었지만, 자식들이 살면서 제 살길이 바빠서 그런 노력들이 그리 쉽지는 않겠지만, 명절에 가족, 고향, 부모님, 그것들 만큼 가치있는게 또 무엇이 있겠는가? 나는 어디에 가치를 두고 살고 있는지도 잠시 생각해 보게된다. Family is Everyth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