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틀 전 불린 콩에서 아주 작은 싹이 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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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공항에서 사온 책 ‘역사, 선비의 서재에 들다’ 읽기를 끝 마치다. 간밤에도 늦도록 이 책을 다 읽으면서 유독 한 챕터에 내 눈이 머문다. 소 제목이 ‘잊힌, 그러나 미친존재감의 인물사’다. 내가 그동안 알지 못했던 이야기라 여기 올린다.

P176) 실록은 지배자들의 역사다. 그러나 여러 고전은 실록에 등장하지 않는 인물들의 이야기도 다룬다.

안용복(安龍福, 생몰년 미상)은 조선 시대17세기의 어부이자 능로군(能櫓軍)[1]이다. 안용복이 없었다면 오늘날 우리가 과연 독도의 소유권을 주장할 수 있었을까? 이익의 <성호사설>은 안용복의 일화를 자세하게 기술하고 있다.

울릉도와 그 부속도서인 독도를 실질적으로 우리 땅에 편입시킨 안용복은 경상도 동래부 소속의 노 젓는 일개 군졸에 불과했다. 그런데 그는 왜인을이 울릉도를 자신들의 땅인 양 침범하는 것을 목격하고 울분을 참지 못해 죽음을 무릅쓰고 일본 본토를 직접 찾아갔다. 왜관을 출입해 일본말에 능숙했던 그는 자신을 울릉도 수포장이라고 소개했다.

구금도 당했지만 호키주 태수를 만나 “양국 간 우호를 두텁게 하기 위해 침략을 마땅히 금지해야 한다.”고 설득해, 다시는 울릉도에 일본인들이 발을 들여놓지 않겠다는 다짐을 받아낸다. 숙종 21년(1965)의 일이다. 안용복이 귀국해 조정에 그간의 사정을 알리자 나라에서는 상을 내리기는 커녕 어이없게도 다른 나라 국경에 침범해 분쟁을 야기시켰다는 죄목으로 참형에 처하려 했다. 시조 “동창이 밝았느냐 노고지리 우지진다.’의 작자 남구만이 극구 만류해 겨우 죽음만은 면할 수 있었다.

조정에서는 안용복을 사형시키지는 않았지만 죄를 물어 귀양 보냈다. 세상에 뭔 이런 나라가 다 있담. 이조 500년 동안 충성된 사람은 죽이고 못되고 야비하며 이간질하는 인간들이 득실거려 온 것. 그 결과는 나라까지 빼앗기는 비애를 가져오지 않았나… 나도 지금 흥분 상태다. 씩씩…

다음은 인터넷 검색에서 찾아 조금 더 보충하고져 한다.

  • 성호(星湖) 이익(李瀷)은 성호사설 제3권에서 “안용복은 영웅호걸이라고 생각한다. 미천한 군졸로서 죽음을 무릅쓰고 나라를 위해 강적과 겨뤄 간사한 마음을 꺾어버리고 여러 대를 끌어온 분쟁을 그치게 했으며 한 고을의 토지를 회복했으니, 영특한 사람이 아니면 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런데 조정에서는 포상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앞서는 형벌을 내리고 나중에는 귀양을 보냈으니 참으로 애통한 일이다”라고 상찬했다.
  • 박정희 대통령은 1967년 1월 안용복기념사업회에 ‘국토를 수호한 공로는 사라지지 않을 것(國土守護, 其功不滅)’이라는 휘호를 기증했다.
  • 1967년 10월 안용복장군 기념사업회는 부산 수영사적공원 안에 안용복의 충혼탑을 세웠다.
  • 시인 노산 이은상(李殷相)은 ‘동해 구름밖에 한 조각 외로운 섬 / 아무도 내 땅이라 돌아보지 않을 적에 / 적굴 속 넘나들면서 저님 혼자 애썼던가 / 상이야 못 드릴망정 형벌 귀양 어인 말고 / 이름이 숨겨지다 공조차 묻히리까 / 이제와 군 봉하니 웃고 받으소서’라는 시를 바쳤다.
  • 수영사적공원에는 2001년 3월에 수강사(守彊祠. 강역을 지켰다는 뜻)라는 사당과 동상이 추가로 세워졌다.[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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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자 싹 틔우는 중이다. 약 30일이 지나서 싹이 더 올라와야 밭에 심을 수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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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 : 8도 / 매우 따뜻했음 / 밭일 많이했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