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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캐나다 이민와서 7년만에 한국에 갔다. 그리던 가족들과 친구를 만나니 너무나 반가워서 눈물이 났다. 그때 이민온 사람들은 국제전화 한통도 마음놓고 할 수 없었을 때였기때문에 고국 방문역시 여간한 결심 하지 않으면 못 할때였다. 나는 시집가서부터 시부모를 7년동안 모시고 살았는데 우리 가족이 캐나다로 이민오면서 시동생 내외가 모시게됐다. 시동생 내외는 마음씨가 아주 착한 사람들이다. 우리 시집은 시숙이 사기를 크게 당하여 온 형제들이 그곳에 돈을 밀어 넣느라고 그야말로 몽땅 다 빈 털털이가 됐다. 내가 시집가고 한 일 년 쯤에 일어난 일이다.

내가 7년만에 시동생 내외를 만났을 때 그들은 너무 가난한 동네에서 살고 있었다. 물론 시부모님도 함께 계셨다. 나는 마음이 무너지는 아픔을 안고 다시 캐나다로 들어와서 시동생 가족들을 이민시키기위해 노력했다. 서류도 우리가 준비해서 (그때는 애이젼이라는 기관도 없었다.) 직접 이민국에 신청했다. 하던 사업이 있어서 그 사업에 시동생 가족을 데려오는 것으로 넣었는데 우리의 간절한 소망을 하나님께서 알으셨는지 아무 문제없이 통과되어 온가족이 캐나다 밴쿠버로 오게됐다.

시동생 내외에게는 아들과 딸이 각각 한 명씩 있다. 이들은 특별한 날에 나를 만나게될 때마다 내 용돈을 넣어주면서 사랑을 전달한다. 이번에 내 생일에 시동생의 딸아이가 역시 예쁜 카드에 용돈을 준비해 왔다. 물론 다른 볼일도 있었지만 이틀 동안 우리 집에서 머물고 있다.

아래 시동생 딸아이 카드에는 금년에 캐나다 온지 33년이 됐다면서 자기 가족들을 불러와서 안착시켜 준 것에대해 너무나 고맙다는 인사를 한다. 또한 시동생의 아들역시 내게 같은 인사를 해 오고있다. 딸은 결혼해서 아들 딸 각각 하나씩 두고 본인은 선생이되어 사회 생활을 잘 해 나가고 있다. 어제는 밤 늦도록 얘기하다가 글도 못쓰고 잤다. 내일은 인터넷으로 학교 휴교에대해 선생들간의 회의를 하게됐다면서 이층으로 자러 올라갔다.

아침상을 차려주니 모두들 입들이 함박꽃이다.

“큰엄마, 너무 맛있어요. 계란이 어쩜 이렇게 맛 있지요?”

“응 그건 맥 반석 계란이다. 내가 가르쳐 줄께”

“와 와, 스콘 맛 죽인다. 할머니 너무 맛있어요.”

“우 우 커피 맛도 짱이예요.” 시동생 사위까지 거듣는다.

아침상을 받고 모두들 행복해한다.

“밴쿠버 나오시면 저희가 대접할께요. 무슨 음식을 가장 좋아하세요?”

“음, 나는말야 맛 있는 음식은 다 잘 먹지. 으 흐 흐 흐”

** 헤어진 옛 남편과는 거리가 멀지만 시동생 가족과 시누이들과는 옛날이나 지금이나 그 사랑에 변함이 없다.

삶은 감동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