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동네’ 세계문학 시리즈로 출간된 존 밴빌의 [바다]. 이 책은 2005년도 맨부커상 수상작이기도 하다. 존 밴빌은 아일랜드 작가이고, 아일랜드 작가 특유의 스토리보다는 의식의 흐름을 쫓아가는 형식으로 소설을 쓰고 있다. 이 책 역시 주인공의 의식의 흐름이 과거와 현재를 오가기에 결코 읽기가 쉽지 않다. ‘바다’는 그의 열 네번째 장편소설이다. 1968년 미국에서 생활할 때 만난 부인 재닛 더넘은 글을 쓰고 있을 때의 그를 가리켜 “막 유혈이 낭자한 살인을 마치고 돌아온 살인자” 같다고 말했다. 우와, 얼마나 혼신을다해 글을 쓰면 아내로부터 그런 말을 들을 수 있었을까?

소설은 주인공 ‘맥스’가 아내를 잃고 노년이 되어서 고향의 바닷가의 별장인 시더빌로 오면서 시작된다. 시더빌은 맥스에게는 어린 시절의 추억이 담겨 있던 곳이다. 그곳에서 그는 그레이스 가족을 처음 만났다. 거친 아버지와 아버지와의 싸움으로 인해 삶에 찌들려 있던 어머니 밑에서 자란 맥스에게 도시에서 휴가차 내려온 그레이스 가족은 마치 신들과 같았다. 그러기에 소설에서 맥스는 당시의 기억을 신들의 세계에 들어간 것처럼 묘사한다.

또한 자신의 계급에서 탈출하는 것이 매우 중요한 요소였다. 어린 시절 자신이 좋아하던 아이의 가족이 ‘신’들로 보였던 것도 이런 계급적 차이 때문인데, 실제로 ‘바다’는 맥스의 어린시절 바닷가가 계급적 구조와 연결되어 있던 면들을 상당히 세밀하게 전해준다.

“과거 속에 사시네요.” 클레어가 말했다. 나는 신랄하게 대꾸하려다가 말을 끊었다. 사실 아이 말이 옳았다. 진정한 삶이란 투쟁. 지칠 줄 모르는 행동과 긍정, 세상의 벽에 뭉툭한 머리를 들이대는 의지, 그런 것이어야 한다. 그러나 돌아보면 내 에너지의 많은 부분은 늘 피난처, 위한, 또 그래, 솔직히 인정하거니와, 아늑함, 그런 것들을 찾는 단순한 일에 흘러들어가버렸다. 이것은 충격까지는 아니라 해도 놀랄 만한 깨달음이었다. 전에는 나 자신을 단검을 입에 물고 다가오는 모든 사람과 맞서는 해적 같은 사람으로 보았다. 하지만 지금은 그것이 망상이었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숨겨지고, 보호받는 것, 그것이 내가 진정으로 원하던 것이었다. 자궁처럼 따뜻한 곳으로 파고들어 거기에 웅크리는 것, 하늘의 무심한 눈길과 거친 바람의 파괴들로부터 숨는 것, 그래서 과거란 나에게 단지 그러한 은둔일 뿐이다. 나는 손을 비벼 차가운 현재와 더 차가운 미래를 털어내며 열심히 그곳으로 간다. 하지만 정말이지 그것이, 과거가 어떤 존재를 가지고 있을까? 결국 과거란 현재였던 것, 한때 그랬던 것, 지나간 현재일 뿐이다. 그 이상도 아니다. 그래도.” (P 62)

** 밴빌이 자신의 문학관을 피력한 말 :

우리 삶은 출생과 죽음이라는 고정된 양극 사이에 아른거리는 뉘앙스들이다. 여기 우리의 존재라는 그 반짝임은, 비록 짧지만 무한히 복잡하여 겉치레, 자아기만, 덧없는 현현, 그릇된 출발과 더 그릇된 마무리로 이루어져 있다. 삶에서는 삶 자체 말고는 아무것도 끝나지 않는다. 삶 자체가 미묘하고 복잡한 것이기 때문에 그 삶을 섬세하게 표현하려는 나의 소설 또한 미묘하고 복잡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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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산 다녀옴 1시간 45분동안 열심히 산을 오르고 내렸다. 그런데도 아직도 졸음이 안 오는 것은 무슨이유일까? 산에서 잠시 길을 잃어 어리둥절 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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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 : 비빔국수
밭에서 난 상추 첫 수확
내일 고구마 심는 날로 정했다

날씨 : 22도 / 더웠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