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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흘 전 핼리팍스에 살고있는 딸의 다급한 전화를 받았다. 아이는 숨이 넘어가는 듯한 목소리로 “아빠가 아빠가…”라며 말을 잊지 못한다. “뭐야? 아빠에게 무슨일이?” “응 엄마” “무슨일?” “코 코 코비드 엄마… “여기까지 겨우말을 해놓고 딸아이는 엉엉 운다. 딸은 아빠가 살고있는 밴쿠버와의 거리가 너무 멀리서 바로 달려올 수 없음에 가슴이 미어진다.

나이 팔십을 넘긴 아빠가 코비드로 병원에 실려갔다는 소식은 딸을 절망케했다. 비행기 티켓을 끊었다며 이틀 후면 밴쿠버에 와서 아빠를 돌보겠단다. 나는 깜짝놀라면서 아빠는 살만큼 살았고 너는 앞길이 구만리 같은데 어떻게 그 위험한 일을 감당하겠냐며 제발 오지 말라고 달랬다. 그러나 딸은 “We are family, I have to help him.” 이라며 “만약 엄마가 이런 상황 이었다고 해도 나는 무조건 달러갈꺼야” 하며 절규한다. 딸의 효심에 내 눈에서도 눈물이 흐른다.

병원에서 퇴원한 아이들 아빠는 기적적으로 살아났고 딸아이는 한 집안에서 각각 거리두기를 하며 열흘동안 아빠를 잘 보살폈다. 처음에는 살이 다 빠지고 기진맥진하여 음식도 못 먹던 아빠가 차츰 원기를 회복하고 음식 냄새도 맡을 수 있게되면서 소화도 잘 시키면서 몸이 많이 회복했다는 소식이다.

밴쿠버에 있는동안 회사일을 하느라 새벽 3시에 일어나야했고 (핼리팍스와의 시차 4시간) 아빠의 음식 챙겨드리기 등 정말 바쁜 일정을 보내고 오후에 밴쿠버를 떠나 시애틀 오빠네 집으로 갔다. “엄마, 아빠를 모시고가요. 몇 달 우리 집에서 요양시켜 드려야 겠어요. 이제 나이 많아서 혼자는 위험해요.” 딸아이는 비행기를 타면서 내게 문자를 보내왔다.

“엄마, 우린 가족이예요. 가족이 가족을 돌보지 않으면 안돼지요. 밖에 나가 놀지도 못하는 조카도 가서 좀 힘이 되어 줘야겠어요. ” 하며 오빠네집을 방문하여 지원이가 그려놓은 그림 두 장을 보내왔다. 아들집에 도착한 딸아이가 비디오 톡을 하면서 들려오는 웃음 소리가 요란하다. 아들네 식구들이 딸의 방문으로 모두들 환한 얼굴들이다.

딸은 아빠를 위해 울더니 오빠네 가족들을위해 웃고있다. 사랑스러운 나의 딸 트리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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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스코 오는길에 콩비지 죽 두고 갑니다. 문자만 남기고 휘리리 가 버린 교회 이순희 장로님 : 감사감사합니다. 아픈동안에 빅토리아 온 동네 음식 다 먹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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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지원이예요. 저는 지금 1학년입니다. 요즈음 학교는 못가고 인터넷으로 공부하고 있습니다. art 선생님이 가르쳐 주는대로 그림을 그려보았습니다. 저는 그림을 그리는 동안 몇 시간도 꼼짝 없이 책상에 붙어있어요. 아빠가 그림 그리는 저를보면서 참 희안하다고 하시네요. 저는 평소에 말괄량이 거든요. 으 흐 흐 흐

어서 코로나가 끝나고 자유롭게 학교 다니고 싶어요. 여러분들도 모두모두 건강하고 행복하세요. 사랑합니다. 지원이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