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란과 케비지 치즈요리 (간단하면서도 맛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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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즈음 책을 길게 못 본다.

눈도 침침하고 허리도 부실해서 의자에 오래 앉아있지 못하기 때문에 답답하다. 그러나 시간이 너무 무료한 것 같아서 어제 오후 책장에서 박완서의 일기 및 신작소설집인 ‘한 말씀만 하소서’를 뽑아 읽기 시작했다. 거의 끝 부분에 ‘꿈꾸는 인큐베이터’를 읽다가 작가 박완서에 대해 커다란 충격을 받았다.

이 글은 1993년 현대문학 1월호에 실린 글인데 아들을 못 낳아 주눅들었던 작가의 실제 경험을 쓴 것이다.

작가가 딸만 계속 낳다가 아들을 낳기위해 양수검사를 받았고 또 딸인것을 확인 한 후 강제 유산 시킨것을 읽으면서 경악을 금치 못했다. 태어나지 못하고 죽어가는 아기가 인큐베이터 안에 있는 모습을 보면서 ‘꿈꾸는 인큐베이터’라는 제목을 붙인 모양이다. 소위 대한민국의 최고의 지성인인 박완서씨가 아들에대한 집착이 상상외로 강했다는 것에 기가 막힌다.

양수검사를 하기위해 시어머니와 시누이가 병원으로 끌고 간 것으로 되어있지만 이것은 자신도 원하기 때문 이었겠지 어찌 자기를 끌고간 시어머니와 시누이를 원망할 수 있단 말가. 드디어 그렇게 원하던 아들을 낳고 작가 박완서는 그렇게 당당하고 세상을 다 얻은 듯 행세하며 시어머니와 시누이를 무시하는 장면도 글에 고스란히 나와있다. 이 분이 정말 좋은 글을 써온 사람이 맞나? 싶을 정도다. 글 한 줄을 쓰기위해서는 몸도 마음도 평온해야하며 최소한의 선한 마음이 기본이 되어야 되는데 그 본성이 별로 존경할 만 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보게되어 실망이 크다.

마지막으로 낳은 귀한 아들이 서울대 의대 레지던트로 일 하던 중 과로에 의한 교통사고를 당해 25세에 사망했을때 그 절망적인 마음이 어떠 했으리라는것은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

아들이 죽고나서 몸부림치면서 쓴 글들을 몇 가지 소개해 본다.

** 그저 만만한 건 신이었다. 온종일 신을 죽였다. 죽이고 또 죽이고 일백번 죽이고도 죽일 여지가 있는 신, 증오의 마지막 극치인 살의, 내 살의를 위해서도 당신은 있어야 돼.

** 나는 신이 생사를 관장하는 방법에 도저히 동의할 수가 없고, 특히 그 종잡을 수 없음과 순서 없음에 대해선 아무리 분노하고 비웃어도 성이 차지 않지만 또한 그런고로 그분을 덧들이고 싶지 않았다.

** 내 아들이 없는데도 온 세상이 살판난 것처럼 들떠 있는 올림픽의 축제 분위기가 참을 수 없더니, 내 아들이 없는 세상 차라리 망해버리길 바란 거나 아니었을까. 내 무의식을 엿 본 것 같아 섬뜩했다. 아아, 천박한 정신의 천박한 꿈이여, 내 아들아, 어쩌면 어미를 이렇게까지 비참하게 만드니.

** 내 아들아, 이 세상에 네가 없다니 그게 정말이냐… 창창한 나이에 죽임을 당하는 건 가장 최악의 벌이거늘 그 애가 무슨 죄가 있다고 그런 벌을 받는단 말인가. 하느님이란 그럴 수도 있는 분인가. 사랑 그 자체라는 하느님이 그것밖에 안 되는 분이라니. 차라리 없는 게 낫다. 아니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 문득 내가 아들 대신 딸 중의 하나를 잃었더라면 이보다는 조금 덜 애통하고, 덜 억울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 해보는 생각이었다. 그런 생각이 떠오른 것 자체가 두려워 나는 황급히 성호를 그었다.

** 나는 남에게 뭘 준 적이 없었다. 물질도 사랑도. 내가 아낌없이 물질과 사랑을 나눈 범위는 가족과 친척 중의 극히 일부와 소수의 친구에 국한돼 있었다. 그 밖에 이웃이라 부를 수 있는 타인에게는 나는 철저하게 무관심했다. 위선으로 사랑한 척한 적조차 없었다. 타인에 대한 철저한 무관심이야말로 크나큰 죄라는 것을, 그리하여 그 벌로 나누어도 나누어도 다함이 없는 태산같은 고통을 받았음을, 나는 명료하게 깨달았다. 하필 변기 앞에 무릎 끓은 자세로, 나는 그 정답에 머리 숙여 승복했다. 고통도 나눌 가치가 있는 거라면 나누리라.

** 일년 전, 내가 그렇게 고통하고 신음할 때, 수없이 되물었던 질문, 하느님, 한 말씀만 하시옵소서, 그러나, 하느님은 일년이 지난 지금까지 그 질문에 대한 답변이 없으시다. 고통의 순간에 수많은 원망섞인 질문을 던질 때, 그 많은 원망을 고스란히 들어주셨던 하느님, 그분의 침묵은 더 많은 원망을 듣고자 하셨던 하느님의 배려였던 것이다.

마침내 고통의 긴 터널을 끝내고 마지막에 하느님의 뜻을 깨닫게 된 작가에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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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네 시에 잠이 깼다. 더 잠을 잘 수 없어 어제 쓰지 못한 글을 적었다. 여섯시에 약을먹고 다시 조금 더 자러 들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