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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인슈타인이 괴델과 함께 걸을 때 – 제8부 – 소제목 ‘죽음은 나쁘다?’에서

그 무언가를 ‘철학적으로’ 한다는 것은, 일상용어로 표현하자면 비합리적인 걱정을 하지 않고 그 무언가를 차분히 마주한다는 뜻이다. 그리고 쳘학적으로 대해야 할 주제로서 ‘죽음’을 들 수 있다.

이 사안에서는 소크라테스가 모범으로 간주된다. 그는 불경죄로 아테네 법정에서 사형 선고를 받은 후 차분히 독배를 마셨다. 그는 친구에게 죽음은 소멸일지도 모르지만 그렇더라도 꿈이 없는 기나긴 잠이거나, 아니면 영혼이 한 곳에서 다른 곳으로 옮겨가는 일일지 모른다고 말했다고 전해전다. 키케로는 철학하기란 죽는 법을 배우는 일이라고 말했다.

그런 생각은 사이언 크리칠리의 ‘죽은 철학자들의 서(Book of Dead Philosophers 2008’에서 죽음을 두려워하는 한 우리는 진정으로 행복할 수 없다고 말한다. 이 책에 나오는 모든 죽음이 소크라테스처럼 장엄하지는 않다.

가령 플라톤은 이(몸에 붙는)에물려 감염으로 죽었고, 계몽사상가 라 메트리는 송로 파이를 먹은 후 세상을 떠난 듯하다. 몽테뉴의 한 형제는 테니스공에 맞아 죽었고, 루소는 몸집이 큰 개인 그레이트데인을 타다가 떨어지는 바람에 뇌출혈로 죽었고, 롤랑 바르트는 정치인 잭 랑과 점심을 먹은 후 세탁 차량에 치어 죽었다. 마르크스는 생식기에 부스럼이 났고, 니체는 정신병을 앓은 말년에 자기 똥을 먹었으며, 프로이트는 뺨에 종양이 자럈는데 냄새가 심해서 그의 애견조차 얼씬거리지 않았다고 한다.

목숨이 간당간당하던 데모크리토스는 ‘뜨거운 빵을 자기 집에 가져다 달라고 시켰다. 그 빵들을 콧구멍에 대자 용케도 죽음을 늦출 수 있었다. 그리고 최후에 남긴 말들 가운데 가장 압권은 하인리히 하이네의 말이다.

“하느님은 나를 용서해 주실 것이다. 용서가 하느님의 전문 분야니까.”

죽음이 그렇게 나쁜게 아니라는 생각은 우리를 홀가분하게 해줄지는 모르지만, 과연 그럴까? 철할자들은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모르지만 나는 절대로 죽음에서 홀가분한 마음을 가질 수 없기 때문에 나이를 먹어갈 수록 내 몸과 마음을 정리하고 있다.

여기 죽음의 공포를 누구보다도 크게 느꼈던 우나무노의 얘기를 잠시 해보자. 그는 1936년 스페인의 파시스트 정당인 팔랑해당의 폭도들한테서 린치를 당할 위험을 무릅쓰고서, 친프랑코 앞잡이인 호세 밀란 아스트레이를 공개적으로 면박했다. 그로인해 가택연금에 처해진 그는 10주 후에 세상을 떠났다. 우나무노가 가장 싫어한 팔랑해당원의 구호는 ‘비바라 무에르데’였다. 즉 ‘죽음만세!’라는 뜻이다.

죽음이 과연 만세가 될 수 있을까? 오늘 밤 내게 주어진 이 철학적 문구를 안고 잠 자리에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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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상 : 보리 밥, 소고기 미역국, 블랙베리, 샐몬구이, 껍질 콩, 야채들과 과일(샐러리/토마토/딸기/빨간 무_

날씨 : 10도 / 흐리고 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