___________________________

내가 우리 엄마가 최초로 거짓말 하는 것을 알았을때는 한국 나이로 일곱 살 때였다. 부산에서 완행 열차를 타고 서울로 가는 길이었다. 그당시 일곱살 부터는 기차표 반 값을 내야 했지만 돈을 아끼려던 엄마는 나를 여섯살로 만들었다. 한국 전쟁 후 누구나 할 것 없이 궁색했고 밥 먹기도 힘들어 여자 아이들은 식모 살이로 남자 아이들은 깡통을 차고 밥 얻으러 다니던 시절이었다.

서울이 가까워 오니까 엄마는 내게 “너는 여섯 살이다. 너는 개찰구 아저씨가 물어보면 여섯 살이라고 말 해야 한다.”를 수 없이 말했다. 나는 담박에 그것이 거짓말이라는 것을 알았지만 아무말 못하고 그러겠노라고 고개를 끄덕였다. 머리를 끄덕이기는 했지만 그때부터 나는 불안하기 시작했다. 개찰구에서 아저씨가 나는 붙잡아 두면 어떻하나? 심장이 두근두근 거리기까지 했다.

드디어 서울역 도착이다.

엄마는 내 손을 붙들고 종종 걸음으로 개찰구를 빠져 나가려 했다. 이때 개표하던 아저씨가 큰 소리로 엄마를 부르며 말했다.

“아주머니 얘는 몇 살이예요?”
“갸는 여섯살입니다.”

“아니, 여섯 살 아이가 이렇게 커요?”

“헐. 와이라 샀노. 남의 아 아 키 큰게 무신 죄요? 갸는 날때부터 키가 컸소. 학신아 (나의 한국이름) 얼른 온나” 하면서 내 손을 우왁스럽게 끌고 개찰구를 빠져 나왔다. 나는 뒷골이 뿌드득 소리가 나는 듯 무서웠지만 우리 엄마는 개찰구 아저씨를 이겨먹고 나는 공짜 기차를 타고 올 수 있었다.

이 일이 지금으로부터 육십 육 년 전의 일이지만 나는 이 일을 자주 떠 올린다. 슬프기도 하고 우습기도 하며 또 지워지지 않는 추억거리로 가끔씩 꺼내본다.

그때는 남자들의 무임승차도 빈번해서 화장실에 숨기도 하고 의자 밑에 기어 들어가기도 하고 기차가 멈추면 얼른 내려서 검표했던 칸으로 얼른 돌아가기도 했다. 기차는 모두 완행열차로서 서울과 부산이 12시간이었는데 정말 지루했다. 그나마 자리에 앉았으면 다행이지만 그렇지 않으면 12시간 꼬박 서서 가기도 했다.

힘듬도 내색없이 그렇게 씩씩하게 살던 엄마가 보고싶다. 다시 한번 내 손을 우악스럽게 잡아 끌어주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설합 정리를 하던 중 엄마 사진을 들여다 보다가 엄마 생각을 해 본다.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날씨 : 11도 / 흐림 / 수영 + Alfa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