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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언니와는 이틀이 멀다하고 통화한다. 언니는 불행하게도 시력이 약해서 문자는 못 보내지만 커다란 돋보기로 카톡에 들어있는 사람들의 이름을 찾아 전화는 건다.

언니는 늘 내게 암이나 기타 험한 질병 없이 팔십을 넘겼으니 언제라도 주께서 부르시면 기쁘게 달려가겠단다. “그렇지 언니?”라며 나도 맞장구를 쳐준다. 우리는 어렸을때 얘기를 하면서 엄마가 우리를 어디다 식모살이 안 보내고 지켜 주신것에 늘 감사드린다. 그당시에는 못 살아서 밥만 먹여주는 집이 있어도 그리로 보내지곤 했으니 공부는 아예 꿈도 못 꾸는 아이들이 많았다. 특히 여자 아이들은 더욱 더 불이익을 당했다.

우리는 딸 다섯에 아들이 둘 이었는데 엄마는 우리가 딸이라고 구별해서 먹이지 않았다. 참으로 감사하다. 내가 시집와서 시부모와 시누이와 함께 살았는데 하루는 퇴근해서 집에오니 시누이가 누룽지를 작은 그릇에 담아 내 상 앞에 올려놓았다. 내가 여러 사람들의 그릇을 보니 모두 여자들 그릇에만 누룽지가 담겨있었다. 그 당시 누룽지라하면 요즈음처럼 일부러 맛있게 눌린 누루스름한 누룽지가 아니었다. 연탄불에 밥을 할때였는데 방에서 다른일 (혹은 TV 시청) 하다가 그만 깜빡하고 밥을 태워 온 집안이 밥 탄 냄새로 가득하곤 했던 시절이다. 당연히 누룽지가 맛이 있을리 없다.

나는 시누이에게 국자를 가져 오라고해서 여자들 그릇에만 있는 누룽지를 남자들 그릇에다 골고루 분배해 주었다. 시누이가 깜짝 놀라 나를 쳐다 보는데 내가 “맛 있는것, 맛 없는 것 다 같이 나눠먹자. 누구 입은 양반 입이고 누구 입은 상놈 입이냐! “라고 큰 소리로 말하니 시아버지도 꼼작 못하고 맛 없는 누룽지를 드셨다.

그 이후로 나는 시누이들에게 인기가 짱!!!! 짱!!!!! 이어서 지금도 한국가면 시누이들이 돈 봉투를 가지고 맨발로 뛰쳐나온다. 옛날 여자들은 불이익 당하면서도 남자들로부터 쇄뇌 당하여 아무 소리도 못하고 살아왔는데 우리 시어머니도 전형적인 그런 삶을 살다가신 불쌍한 분이셨다. 나는 늘 시어머니에게 “여자들은 매월 생리도하고 아이도 출산하기 때문에 더 잘 먹어야 한다. 남자들은 밖에서 갈비뜯고 잘 먹고 다닌다. 우리는 남자 걱정하지말고 우리 걱정만 하면된다.”고 매번 교육시켜드렸다. 물론 내가 직장 생활을 해서 돈을 잘 벌어왔기 때문에 이런 큰 소리도 치기는 했지만 시어머니는 나를 좋아하면서도 어려워하셨다.

요즈음은 흰 밥을 안 해먹기 때문에 일부러 누룽지 만들 기회도 없지만 어쩌다 누룽지를 보면 언제나 그때 생각이 나곤해서 큭~ 웃음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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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 : 흐림 / 10도 / 교회 다녀옴 – 주기도문에 관해 설교 제 2탄 들었다. 매우 감명깊은 설교로 매 번 은혜의 도가니에 빠진다. 기도를 좀더 구체적으로 해야 할 것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