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사님이 쓰러진 것을 안 것은 금년 초였다. 일년에 한 두 번씩 안부해 왔는데 늘 정정한 목소리에 유모가 넘치는 분이었다. 이번 전화에는 목소리가 웅얼거리는것이 예감이 이상했다. 아니나 다를까 쓰러져 몸의 절반을 못쓰고 눈도 한쪽 안 보인단다. 내 입에서는 “아”, 소리만 나온다. 평소에는 남의 병을 관리해 주던분이 이제 자신도 남의 보호를 받아야 하는 입장이 됐다.
길이멀고 일이 바쁘다는 핑게로 차일피일 미루어오던 방문을 지난 금요일에 하게됐다. 전화상으로 두번이나 내게 서리매모리얼 병원에 있다고 말했는데 막상 패리를타고 나가면서 병원에 확인하니 그곳에 없단다. 하이고야~ 이제 치매까진가? 그분이 자기가 들어있는 병원을 잘 못 알리가 없는데 난감했다. 다행히 병원측의 여러곳 서치로 그분의 거처를 알게됐다. 아마도 써리병원에 응급으로 있다가 센터로 옮긴 듯 하다.
써리 매모리얼에서 알려준 센터 6층에 올라가니 병실이 비어있다. 간호원에게 물으니 휘~ 둘러보면서 “아, 저기”라며 손으로 가르킨다. 박사님이 아랫층으로 내려가려고 엘리베이터 문 앞에 서 있는 모습이 멀리서 보인다. 가까이 가 보니 그 분인가? 할 정도로 얼굴과 몸이 말라있다.
“Are you Dr. Durgo?” 그가 천천히 몸을 돌려 내 쪽을 바라본다. 다가가서 자세히 보니 맞는 얼굴이다.
“Joe” 나는 크게 소리를 지르며 다음 말을 잊지 못했다. 우리는 동시에 눈물을 쏟아냈다.
두어시간 함께 얘기를 나누는데 설합에서 사진들을 꺼내보여준다. 병원에서 일 하던 모습과 젊었을때의 모습이다. 내가 가져가서 독자들과 나누고 가져와도 되냐고 물으니 쾌히 승락한다. 모든 병든 사람을 사랑했던 분. 특히 에이즈 연구를 오랫동안 해 왔는데 그들에게도 지극히 정성을다해 대해주던 분아닌가. 근간에는 심장병치유를위해 5개월전에도 밴쿠버에서 각 국 심장전문의들과 어깨를 겨루며 컨퍼런스를 가졌다는데 당신의 연구가 단연 최고의 가치를 인정 받았다고 한다.
회복되면 다시 그 일을 마무리하려는 의지를 내게 보이는데 내 눈에는 그것이 불가능하게 보인다. 손으로 글씨를 쓸수도 없는데 컴퓨터는 어떻게 칠 것인가? 사람들의 묻혀있는 가능성을 발굴해 내어 강하게 붙잡아주는 분. 선한것이 무엇인지 사랑하는 것이 무엇인지 가르쳐준 분이다. 내게는 더 없이 소중하고 귀한 분아닌가. 내가 화가의 길로 갈 수 있게 달달볶던 분. 이날도 내게 “너는 왜 계속 공부해서 박사가 되지 않느냐? ‘Dr. Alicia Lee Artist’ 이게 얼마나 멋지냐”면서 아직도 내게 더 분발하라고 나무란다.
병원을 방문하고 온 다음날 전화를 하니 “The flowers which you gave to me is so beautiful like you.” 라며 고마워한다. 환자에게 먹여야하는 심심한 점심메뉴 / 모두다 남의 도움없이는 움직이는 못하는 이들 / 외롭고 괴로운 하루하루를 보내야하는 환자들을 보고 나오면서 나는 또 눈물이 하염없이 흘러내린다. 인생의 마지막은 너무 가혹하다. 그냥 쓰러져 죽어버리면 좋으련만 왜 고통당하다 죽어야하는지 이 시간에 나는 감히 하나님께 투정을 부려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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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제 사이트가 정말 많은 고난을 겪었습니다. 오늘부터 새로운 사이트로 글을 보내게되어 감격스럽습니다. 이 사이트가 아직은 좀 엉성하지만 옛것은 차차 복구하여 다시 올려놓겠습니다. 많은 독자님들의 염려와 기도에 다시한번 감사드립니다.
지금은 시애틀에 와 있습니다. 손녀의 베이비 싯을위해 또 달려와야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