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쪽 눈에 이상이 생겼다. 실 같은 검은 줄이 눈동자를 움직이는 곳마다 따라 다녔다. 인터넷을 뒤졌다. ‘노화로 인하여 유리체의 성분이 일부 액체화 되어 시신경과 붙어 있던 부분이 떨어져 먼지, 벌레 등의 모양으로 떠다니는 것이다’ 시신경과 붙어있는 것이 떨어지면? 실명이 되는 건 아닐까? 불안한 마음에 안과를 찾았다.

이른 시간이어서 그런지 진료실에는 여든 살은 되어 보이는 할머니가 앉았고, 할아버지는 고개를 숙이고 서서 차트를 작성하고 있다. 기록을 끝낸 할아버지가 물을 한 잔 따라 마시면서 할머니에게도 줄까 묻는다. “쪼끔만 줘 보소.” 부부인가 보다. 신선한 젊음을 함께 보내고 노년을 서로 다독이며 걸어가는 중에 눈 검사도 하러 왔나보다. 두 사람이 먼저 간호사에게로 불려 들어가더니 곧 이어 내 이름도 불러졌다.

눈에 약을 넣고 턱받침에 턱을 고인 채 기계 속의 빛 방향 따라 오른쪽 왼쪽, 위 아래로 움직였다. 안압 등 모든 것이 정상이라는 고마운 검사 결과가 나왔다. 눈에 이물질이 보이는 것은 비문증 증세라고, 인터넷에서 본 대로 노안이 되어가는 과정이라고 한다. 내가 물었다. 시신경과 붙어있는 것이 자꾸 떨어지면 어떻게 되나요? 의사가 하하 웃으며 말한다. 늙어 가면 머리도 빠지고 팔 다리 근육도 빠지지요. 그것하고 똑 같은 거랍니다. 눈도 늙어가는 중이지요. ‘늙어 가는 중…’ 그 말이 여운이 되어 마음 한켠에 오롯이 앉는다. 어디서 들어본 소리다.

남편은 몇 년 전만해도 내가 아프다고 하면 운동부족이라고 했다. 그것이 언제인가부터는 늙어서 그렇다는 말로 변했다. 운동부족라고 할 때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늙어서, 라는 말은 길가에 뒹구는 낙엽처럼 서러웠다. 친구들에게 남편의 매정함을 흉 봤더니 모두 동지를 만난 듯 흥분했다. 어떤 남편은 첫마디가 아픈데 골프 치러 나가지 마라, 란다. 내과 의사인 남편은 어허이, 뚝! 여자들은 나이가 들면 모두 그래. 이었다고 한다. 그들에게 아내의 신체적 변화는 그저 가을이 가니까 겨울이 오는 당연한 자연의 순리다.

의사는 녹내장 검사도 해보자며 기다리라고 한다. 긴 복도에 혼자 앉아있는데 다른 방에서 검사를 마치고 나오신 할머니가 옆에 앉는다. 별 이상이 없답디까? 멀뚱멀뚱 바라보고 있기가 민망해서 내가 물었다. 꽃무늬 헝겊가방을 뒤적이던 할머니가 고개를 들며 빙긋이 웃는다. 백내장이라요. 늙었으니 고장 나는 거는 모두 그렇거니 해야지요. 둘이서 쓸쓸히 웃는데 커다란 할아버지 고함 소리가 들린다. 이 할망구가 어데 갔나 했더니 여기에 있네. 빨리 안 나오고 뭐해! 어느새 파킹장까지 나갔다가 도로 들어오신 모양이다.

부부가 살아온 삶도 늙는 것일까. 감은 늙으면 부드럽고 달콤한 홍시가 되고 석류는 늙으면 찬란한 보석을 터뜨리는데…. 이제야말로 부부라는 존재에 대한 근원적인 사랑을 할 때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