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자속의 비밀 – 수필 (엘리샤 리)

아름다운 햇살이온 대지를 밝혀준다.

주말 모든 일들이 정지된 듯 거리도 조용하고 일터도 한산하다. 느긋하게 아침을 먹고 화장기 없이 머리도 헝클어진 후줄근한 자신의 모습을 거울에 비춰보면서 눈썹까지 달고 화려한 변신으로 이곳 저곳 파티에 참석했던 지난 일들이 떠오른다. 현재 거울에 비치는 내 모습이 진짜인가, 화장을하고 근사한 액세서리로 치장을한 모습이 진짜인가 잠시 생각에 잠겨본다. 미국에서 생활할때 ‘재미수필문학가 협회’ 송년회에서 늘 사회를 맡아왔다. 게임이나 티켓 추첨후 회원들이 나와 상품을 고를 때 우선 크고 화려한 포장에 관심이 쏠리는 것을 보게된다. 작은 상자에 더 오붓하고 값나가는 선물이 들어있는 것을 아는 나는 큰 상자를 골라 싱글벙글 거리며 자리로 들어가는 회원들을 보면서 겉치장의 속임수에 대해 생각해 본다.

우리가 이미 잘 알고있는 ‘베니스의 상인’에서 아버지의 유언에 따라 제비뽑기로 신랑감을 정해야할 운명에 놓인 재색을 겸비한 상속녀 포오샤가 있다. 여기서 제비뽑기라함은 금, 은, 납 세 가지의 상자 중 한군데만 들어있는 포오샤의 초상화를 뽑는 사람과 결혼할 수 있는 것이다. 수많은 구혼자들 중의 한 사람인 모로코의 왕은 화려한 금상자를 선택했고, 다른 한 사람은 은상자를 택했지만 그녀를 매우 흠모하던 안토니오는 우여곡절속에 제비뽑기 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고 화려한 것들을 뒤에 두고 수수한 납 상자를 택해 포오샤의 신랑감으로 선택되는 영예를 안게된다.

몇 달전 평소에 잘 알던 피부가 아름답고 겉모습이 근사한 여인으로부터 상처를 입게됐다. 나와는 무관한 일인데 자신의 계획하던 일이 뒤틀리면서 내게 터무니없는 강짜를 부리며 그녀의 본색을 들어냈다. 그 동안 쌓아왔던 그녀와의 관계가 와르르 무너져 내리면서 아름답게만 보아왔던 겉모습이 찌든 호박처럼 보여졌다. 그런가 하면 최근에 알게된 여인이 있다. 겉으로 보면 너무나 평범한 여인이다. 그러나 그녀를 만나면 만날수록 겸손을 겸비한 박식함에 매력을 느낀다. 그녀가 가장 많이 쓰는 말 중 “고수위에 다른 고수가 있다.”란 말은 스스로 삶을 자제하며 사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처음 인상과는 달리 수선화처럼 산뜻한 모습으로 보여진다.

만약 하나님이 인간에게 태어날 때부터 똑 같은 상자를 하나씩 주면서 자기의 삶을 그 상자 속에 담아오라고 했다면 육십 중반의 내 상자 속에는 무엇이 담겨져있을까. 가만히 상자 속을 들여다본다. 조금밖에 담겨있지 않은 상자 속이 그나마 엉성하고 삐쭉거리고 거친 것들로 채워져있다. 금년에는 상자 속을 털어 내어 버릴 것은 버리고 거친 것들은 다듬고 빈 공간은 채우면서 정리를 해야겠다. 그리하여 비록 겉은 납 상자로 보이더라도 그 속에 포오샤의 초상화가 담겨있듯 서로 갖고싶어하는 상자로 만들고 싶다. 그리고 빈 공간에는 즐거운 비밀들로 가득 채울 것이다. 열어 볼 때마다 웃음이 솟아나는 나만의 세계, 그 웃음이 남에게 전해져 또 하나의 웃음을 낳게 하는. 눈을 들어 6월 하늘을 올려본다. 어쩐지 여름 내내 기분좋은 날들이 이어질 것 같은 기분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