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 다닐 때까지 교실에 내 그림이 교실 뒤에 붙어있곤했다.
초등학교 6 학년때는 우리반에 갑자기 어디서 전근 온 여자 아이가 있었는데
그 여자아이와 내 그림이 언제나 앞을 다투어 붙여졌다. 그 여자아이는 아버지가
당대 유명한 만화가 박기당씨였다. 키가 작고 귀엽게 생긴 박기당씨의 딸이 나와 한
반이었는데 미술시간이면 선생님이 내 그림과 그녀의 그림을 뽑아갔다.
나는 그녀의 백그라운가 너무나 부러웠다. 우리 아버지도 그림을 무척 그리고
싶어했다는데 그 뜻을 이루지 못했고 나도 그림을 무척 그리고 싶었지만
가정형편상 그림그린다는 말은 입 밖에도 꺼낼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뿐만아니라
우리 가족중 아무도 내가 그림에 소질이 있다는 것을 모르고 지내왔다.
고등학교 시절에 슬픈 이야기가 있다.
어느날 학교 복도를 걷다가 미술반 옆을 지나치는데 내 그림이 미술반에
붙어있다. 나는 깜짝 놀라 내 눈을 의심하면서 다시 보아도 분명히 내 그림인데
다른 아이의 이름이 그 밑에 붙어있다. 나는 그때 미술반 문을열고 들어가 내
그림을 당장 집어 왔어야했는데 그러지 못했다. 슬피 울면서 집으로 걸어가면서
두 주먹을 굳게 세우며 언젠가는 내가 꼭 그림을 그리고 말리라는 다짐을 했었다.
지금 같으면 미술 선생을 고소를 해서 내 정신적 피해의 보상을 다 받아 내겠건만.
그때 우리아이들은 선생이 무서웠고 자유스럽게 소통하지 못했다. 나는 자존이
상한 것은 물론이고 억울해서 꺼억꺼억 울면서 집으로 갈 뿐이었다. 더우기 내 이러한
사정을 우리 집에서 안다한들 아무도 나서서 학교로 달려갈 사람이 없었다.
이제와 생각해 보니 그렇게 내 그림을 도둑질 해간 선생이 고맙게 여겨진다.
그때 가졌던 분노의 칼이 지금 내 화실에서 부드러운 붓으로 다스려지고 있으니
이 얼마나 감사한가!
그림 그리고 싶었던 아이는 이제 매일 그림을 그리고 있다. 그림속에 빠져 나올 줄 모르는
미아처럼. 그래서 너무 행복한 아이. 그 아이는 오늘도 내일도 그렇게 그림을 그릴 것이다.
———————————————————————————————————————–
인터넷 검색으로 아래 글과 그림을 첨부합니다.
1950년대부터 만화가로 활동한 박기당님의 ‘파고다의 비밀’ 1권 입니다. 지금의 기준으로
보면 코믹스라 불리우는 만화 보다는 그래픽 노블에 가까운 구성입니다. 김종래, 산호 등과
함께 전후 황폐해진 대한민국 문화시장에 한 획을 그은 중요한 만화작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