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대 할머니가 외래를 찾아와 하소연 한다.
“목에 무엇이 걸려 음식이 넘어가지 않소. 이비인후과에서는 아무 이상 없다고 하는데
참말로 환장할 노릇이네”
*결혼해서 오십 평생 따뜻한 말 한마디 없고
*괴롭던 시집살이 때 손 한 번 안 잡아주고
*소처럼 일만시켜먹고
*늘 바람 피우고 술 마시고
*자식 때문에 살아온 인생 그것이 억울해서 목에 무엇이 안 넘어가지예?
의사선생이 주르르 주문을외운니
할머니 눈에 닭똥같은 눈물이 주르르…
“용서하지마소. 사람들은 다 잊어버리라고 하지만 그게 어디 잊힐일입니까?
절대 잊어버리지 말고 용서하지 마소. 미운 할배는 그렇다 치더라도
할머니는 살아야 할거 아닙니까? 그러니 밥 잡수실 때 밥이 할배라 생각하고
꼭꼭 씹어 넘기이소. 미운 할배라고 생각하면 잘 씹히고 잘 넘어갈 겁니다.”
의사선생이 할머니의 뱃 속을 시원스레 긁어준다.
“젊은 양반이 용하네. 내 마음을 어찌 그리 잘 알꼬.”
“내 무덤까지 내 영감 용서히기 어렵데이.”
왜 우리는 다 용서하라고 하는가?
용서 못하는 사람은 용서 못하는대로 살고 용서를 빌러와서
화해가 되면 용서하는 것이다. 내 가슴은 응어리져 죽을지경인데
사람들은 쉽게 모두들 다 용서하고 잊으라 한다. 안되는데 어떻게?
이 의사선생의 대답은 웬지 내 가슴도 시원하게 쓸어준다.
이 할머니도 더 늙어서 분노할 힘 마져 없어지면 용서고뭐고 다 귀찮아 지는 날이온다.
그때 자연스레이 다 용서가 되거늘 안되는 용서를 미리 할 필요는 없다.
기독교인인 내가 이렇게 글을쓰면 혹자는 ‘믿음이 적구나.’라고 생각할련지 모른다.
그렇다 나는 믿음이 적다. 이 의사처럼 인간답게 사람의 감정을 풀어주는 말 한마디로
이 할머니는 이미 해답을 얻고 일어나지 않은가?
용서하지마소!
이 부정적인 말이 왜 잠언처럼 들려오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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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찍부터 거실에서 나와함께 거하고있는 포인세치아 첫 삽 떴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