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미숙의 열하일기 중 몇 장면을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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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영태의 집은 깔끔하면서도 화려하다. 무슨 물건이든 다 처음 보는 것들이다. 구들위에는 모두 융과
봉황을 수놓은 털담요를, 걸상이나 탁자에는 비단 담요를 깔았다. 뜰에는 시렁을 설치하고
삿자리로 햇볕을 가렸다. 사방으로는 연노란색 발을 드리웠다.
앞에 석류 화분 대여섯 개가 놓여있는데, 그 중 어떤 것은 흰 석류꽃이 활짝 피었다. 또 이상한
나무 화분이 하나 있는데, 잎은 동백같고 열매는 탱자 비슷하다. 그 이름을 물으니 ‘무화과’라
한다. 열매는 두 개씩 나란히 꼭지에 잇닿아 달린다. 꽃이 없이 열매가 맺히기 대문에
이런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이 집 앞문으로 나가 보니 바깥뜰이 수백 칸이나된다. 삼사(정사, 부사, 사장관)와 그 일행들이
다 함께 이 집에 들었건만, 다들 대체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없다. 드나드는 장사꾼과 나그네들이
끊이질 않는다. 또 20여 대 이상의 수레가 문이 미어터지게 들어온다. 수레를 끄는 말과 노새가
각각 대여섯 마리씩 되지만 떠드는 소리라고는 전혀 없다. 깊이 감추어져 텅 빈 듯 고요하다.
모든것이 규모가 잡혀 있어서 서로 거치적거리면서 방해가 되는 일이 없다.
언뜻 보기에도 이러니, 나머지 세세한 것들이야 말할 나위가 없다. 중국이 이 처럼
번화하다는 건 참으로 뜻밖이다. 좌우로 늘어선 점방들은 휘황찬란하다. 아로새긴 창문,
비단으로 잘 꾸민 문, 그림을 그려 놓은 기둥, 붉게 칠한 난간, 푸른빛 주련, 황금빛 현판등.
국경 지방 시골 오지에도 이처럼 정밀하고 우아한 감식안이 있다니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다른 집에 들어가 보았다. 조금 전 강영태의 집도다도 더 크고 하려하지만 가옥 구조는
거의 비슷하다. 중국인들은 대체로 집을 이렇게 짓는다. 우선 땅을 다음어 수백 보 정도로
길이나 넓이를 적절히 준비한다. 사면을 반듯하게 깍아서 측량기로 높낮이를 잰다.
나침반으로 방위를 잡은 다음 대를 쌓는다. 그 바닥에는 돌을 깔고 그 위에 한 층 또는
두 세 층 벽돌을 놓으며, 다시 돌을 다음어서 대를 장식한다. 건물이 구부러지거나
잇달아 붙지 않게 한다.
첫번째가 내실이고, 그 다음이 중당, 셋째는 전당, 네번째는 외실이다. 외실 밖은 큰길에
붙어있어서 점방으로 사용한다. 문은 반드시 앞뒤가 꼭 마주서게 하여, 집이 서너 겹이라면
문은 여섯겹이나 여덟 겹이다. 그렇지만 활짝 열어젖히면 내실부터 외실까지 한눈에
꿰뚫어 보여 마치 화살처럼 똑바르다. 그들이 하는 말에 “겹문을 활짝 여니, 내 마음도
이와 같구나.” 하는 게 있는데 이는 그 곧고 똑바름을 비유하는 말이다.
** 연암은 당시 (230년 전) 중국 사람들이 빈틈없이 똑 바른 규격의 벽돌로 집을 짓는것에
감탄한다. 벽돌을 쌓는 방법은 한 개는 세로, 한 개는 가로로 놓아서 저절로 감 이와 같은 괘 모양이
만들어지게 하는 것이다. 그 틈서리에는 석회를 종잇장처럼 얇게 발라 붙인다. 벽돌이 겨우 붙을
정도라서 그 흔적이 실밥처럼 가늘다.
또한기와를 이는 법도 상세히 적어놓았다. 얼마나 조직적이고 섬세한지 우리나라 지붕의
초라한 것을 한탄하기도 한다.
이 글을 읽는동안은 마치내가 타임캡슐을타고 거기에(청나라) 가 있는 느낌이다.
2 주 후 문학회에서 발표 해야하기 때문에 열심히 공부하는 중이다.
배우는 것은 언제나 즐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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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대 변화가 모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