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원이는 고집이 아주세다. 자기가 하고져 하는 일은 누구도 못 말린다.

아침에 학교를 데리고 갔는데 자동차에서 내리지 않고 있다.

왜 그런가 차 안을 들여다 보니까 자기가 앉는 카 시트의 벨트를 자기가 앉았던 것 처럼

다시 버클하고 있는데 그것이 잘 안 들어가서 끙끙대고 있다.

“지원아, 그것은 우리가 집에갈때 하면 되니까 지금 학교에 우선 들어가야한다.”

“No”

“Hurry Up” 나와 지원이는 계속 같은 말을 하면서 신경전을 벌렸다.

‘”Okay. 할머니는 혼자 학교 들어가니까 너는 차 안에 있으렴.”

나는 차 문을닫고 학교로 향해 걸어갔다. 멀리서 들려오는 지원이의 울음소리…

이런 경우가 종종있다고 아들 내외로부터 듣기는 했다. 지원이같이 고집센 아이들은

잘 돌려서 간접적으로 꺽어야한다. 순한 아이들이 있고 이렇게 고집쟁이도 있는데 고집쟁이

아이들에게 휘둘리면 나중에 부모가 큰 곤역을 치루게된다.

한 참을 지내다 내가 다시가서 차 안을 들여다보니 철철 울면서 “Daddy Dayy”를 찾고있다.

내가 반 강제로 아이를 안아서 차 에서 내리게 했다. 교실 문을 열고 들어갈 때 까지

“아빠 아빠”를 부르며 서럽게 운다. 아직은 남들앞에서 큰 소리로 우는것이 부끄러운지 를

모르는 나이다.

지원이 반 선생이 지원이를 보더니 얼른 달려와 안아준다. 서럽게 아빠를 찾는 지원이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면서 부드러운 말로 위로한다.

“그렇지 지원아? 아빠와 떨어지는 것이 힘들지? 그냥 울어도 돼. 우리는 힘들때

울기도한단다. 너도 그냥 좀 울어봐.” 지원이가 선생을 쳐다보면서 위로 받는지 울음 소리가

약해진다. 나는 여기까지의 상황을보고 교실에서 물러나와 집으로 왔다.

“울지마 울지마, 다른 아이들은 다 안 우는데 너만 울고 있잖아. 우는것이 부끄럽지 않니?”

나는 우는 지원이 에게 이렇게 말했는데

선생은 지원이 에게 이렇게 말한다  “울어. 울어봐, 걍 울어도 돼. 사람이 울 때도 있거든.”

지원이를 학교에 내려놓고 집으로 돌아오면서 생각해 보았다.

나는 설령 학교에 조굼 늦어도 아이가 끙끙대면서 버클을 잠그려는 것을 왜 도와주고 함께

차에서 내리지 못했을까? 지원이는 벌써 자기 스타일의 방식이 있었던 것을 왜 모르고

어른인 내 방식만 고집하고 아이를 울렸을까? 고집 센 것도 그렇게 태어난 것이지 어디 그것이

아이 잘못인가? 우는 아이 달래는 내 방식, 그것도 아주 고지식한 옛날 방법아닌가?

오후에 지원이를 픽업가니 “오늘 학교에서 지원이 아주 잘 놀고 ‘Show and Tell’ 도 잘 했어요.”라며

지원이 반 선생이 말해준다.

“Hi~ 할머니” 웃으며 달려와 안기는 지원이, 아침일은 다 잊고 팔딱 거리며 내 손을 잡는다.

프로페셔널 선생의 한 마디 내게는 큰 교훈을 던져 주었다.

윽박지르고 소리치는 것 보다 부드러움이 강함을 이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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