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에 한국에서 엘에이 조카네집에 와 있는 우리 집 왕 언니와 통화하게됐다.

언니는 팔십을 넘었고 다리가 아파서 겨우 거동하는 처지다.

칠 남내 중 막내인 나는 위로 두 언니만 살아계시는데 이 왕언니가 우리집 첫째 딸이다.

내가 언니에게 아버지에대해 물었다. 그동안 살면서 아무도 내게 아버지 얘기를 안 해

주어서 궁금증이 많았다. 내 물음에 언니는 담박에 내게 대답한다.

“아버지는 너무 좋으신 분이었다.”

“네에? 아버지가요?”

“그럼…” 얼굴이 보이지 않아도 언니는 먼 추억속으로 자신을 끌고사서 거기서 아름다운

꿈을 꾸는 듯 한 목소리다. 그리고 계속해서 이어지는 아버지는 좋은 분이셨다는 얘기.

“믿을수가 없어요.”

“정말이다. 너무 고상한 인격에 부드럽고 자상 하셨지. 동네 구장도 해서 많은 사람들에게

편지도 써주었고… 그리고 내게 많은 동화도 들려주셨지. 지금도 나는 아버지로부터

들은 동화를 내 아이들과 손자들에게까지 들려준단다.”

“네에??? 동화까지요? 헉~”

나는 정말 처음 듣는 얘기가 어떻게 이렇게 모를수가 있었을까?

엄마로 간간이 들었던 술 마시던 아버지 소리밖에는 기억이 없으니.

짧게 말하면,

일본가서 배운 방직기술로 방직공장 사장으로 일제 시절에도 어려움 없이 잘 살던

아버지가 명주 살돈 (옛날에는 순전히 현찰)을 친구에게 몽땅 도난 당한 후

다시 경제적으로 일어서지 못하고 자포자기 하면서 말년을 술로 살아온 슬픈 얘기다.

그러니까 사람은 다 사연이 있기 마련이다. 아버지의 그 따뜻한 마음과 마주해 보지 못했던

망내인 나는 또 얼마나 슬픈가. 내게는 결코 가질 수 없었던 그 따스한 아버지가 보고 싶었다.

채워지지 못했던 부성. 그리움의 끝자락이라도 만져보고 싶었던 어린시절. 다락속에서 숨죽어

울며 잠 자던 밤들. 한번도 학교 입 졸업식 때 보지 않았던 아니 와 볼 수 없었던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으므로) 아버지. 그 아버지가 좋은 분이셨다는 왕 언니의 말은 내게 커다란

충격이다. 지금 머리가 얼얼하고 혼미하다.

꿈에서라도 한번 그런 모습의 아버지를 만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 사랑을 듬뿍 받고

살아온 우리집 왕 언니가 너무 부럽다.

“우리 아버지는 너무 좋으셨던 분이다. 아주 많이”

왕언니는 나와 전화를 끊으면서도 계속 이렇게 후렴을 하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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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 부엌에 있는 올키드 (벌써 세 번째 꽃이 피었습니다. 선물 받은지 1년 6개월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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