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아이가 사는 핼리팍스와 빅토리아는 시차가 4 시간이라 딸은 자기 전에 주로 내게 전화한다.
“엄마, 오늘은 어때?”
“응, 좋지”
“아픈데는 한 군데도 없고?”
“그럼 왜 아퍼. 저녁먹고 운동 갈껀데 뭐. 열심히 운동해야 나중에 안 아프지.”
“오 다행이다. 엄마. 우리엄마 최고다.”
주로 이런 얘기들이지만 하루 걸러만큼 내 안부를 묻는 딸이 고맙기 그지없다.
내 결혼 생활 오랫동안 시부모와 함께 살았는데 나는 힘들었지만 딸아이는
그것을 아주 주의깊게 본 모양이다. 딸이 어릴 때 내게 한 말이 생각난다.
“엄마 늙어서 힘들면 내가 모실꺼야.”
“아 야 야 야… 나는 혼자 살꺼다. 정 안되면 양로원에 갈꺼고.”
“Nop” 딸아이는 단연코 안되는 일이라고 손을 휘 휘 젖는다.
“엄마도 할머니 할아버지 모시고 살았으니 나도 그렇게 할꺼야.
엄마 은퇴하면 내가 부족한 것을 도울테니 말 만하세요.”
딸은 매일 일 그만 하라고 닥달이다.
나는 오래전 양로원에서 일 년 반동안 일 한 경험이 있다.
젊었을 때 모두 잘 나가던 사람들이지만 치매에 걸리거나 소생 못하는 큰 병에
걸려 죽는 날만 기다리는 사람들을 보면서 큰 충격을 받았었다. 늙고 병듦은
서러운 일이다. 이제 나도 부인 못하는 늙음의 대열에 척 들어 앉았다.
처음에는 ‘senior’ 하던말이 어색하더니 이제는 아주 자연스럽게 나온다.
패리를 타고 갈 때 senior는 약간 디씨를 해주는데 몇 년 전에는 내가 ‘I am senior’라고
말 하면 꼭 운전면허증을 보자고 하는데 이제는 말 안해도 이미 senior’로 보여서인지
뭇지도 않고 척~ senior discount를 해 준다. 패리요금을 조금 깍아주는 것은 고맙지만
묻지않는 ‘운전면허증 제시’는 슬프기까지 하다.
“제발 내게 운전 면허증을 보자고 말해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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