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청자의 아프리카 사랑’을 틈 나는대로 읽고있다.
어린시절 초등학교를 1등으로 졸업했는데 학부형 대표로 감사 인사를 하기로 한 아버지가 그날
나타나 주지 않았다. 김정자씨는 그 날만 손꼽아 기다렸는데 아버지의 졸업식장 불참으로 너무나
실망한다. 그 이후로 어른을 믿을 수 없다고 판단하고 앞으로 자신의 힘으로 살아갈 거라
다짐했고 그녀의 독립심은 그때부터 싹텄던 것 같다고 말한다.
여기까지만 읽으면 김청자씨의 아버지에대해 사람들은 의아해 할 것이다. 1등으로 졸업하는 딸이
얼마나 자랑스러웠을텐데 졸업식장에 나타나지 않았으니. 아버지에게도 사연은 있었다.
학부형대표로 인사를 하면 졸업식이 끝나고 선생님들을 모시고 식사 대접이라도 해야 하는데
아버지에게는 그럴 만한 돈이 없었다. 여기저기 돈을 구하러 다녔지만 결국 구하지 못했고
졸업식장에 오는 것을 결국 포기 하고 말았다고 한다.
딸은 이렇게 서술한다.
“부모는 때로 자신의 자존심 때문에 자녀가 어떤 상처를 받는지 생각하지 못한다. 그날 1등오르
졸업하는 딸이 자랑스러웠다면 아버지는 자존심을 내려놓고 학교에 오셨어야 했다.
학부형 대표로 감사 인사를 하고 난 후, 오늘은 식사 대접을 하지 못하지만 다음 기회에 꼭 자리를
마련하겠다고 양해룰 구하고 내 손을 잡고 집으로 돌아오셨어야 했다.”
우리나라 사람은 체면을 아주 중요시한다. 요즈음은 많이 달라졌지만 내가 어릴때는
김청자씨 아버지 같이 없는것에대한 부끄러움이 너무 많았던 시절이다. 어찌 돈 없는 것 뿐일까?
공부 못해도 챙피하고 얼굴 못 생겨도 남 앞에 선듯 나서지 못하고 기타 남보다 못 한 것 혹은
없는것에대해는 숨겨야 했다.
내가 40년 전 캐나다에와서 처음 받은 충격은 이런 말을 들을때였다.
“우리부모 이혼했어요.” (그 시절 한국에서는 이혼이라는 것이 곧 가족은 물론 본인에게 커다란 수치로 여길 때였다.)
“나 공부 밑 바닥이예요.” (공부 못 하는 학생이 어떻게 저렇게 당당하게 말 할 수 있을까?)
“나 이번 성적표에 평균 C를 받았어요.” (평균 C라면 겨우 턱걸이 올라간 것인데 그것이 자랑스러울까?)
“나 통장 바닥났어요.” (아니 돈 아껴 쓰지않고 브로크 됐다고 큰 소리 칠 수 있을까?)
이곳에서 오래 살다보니 이런 얘기는 이제 그냥 “하이~” 하는 소리 쯤으로 들린다.
나도 부끄러운 얘기나 체면 깍이는 얘기도 술술 하고 있는 것을 보니 이제 캐네디언이 다 된 모양이다.
체면 벗어 던지면 사는 것이 훨씬 수월하고 행복하다. 누가 뭐라면 어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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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그릴 두 마리의 개 사진을 받았습니다.
포즈가 정말 기가 막힙니다. 잘 그려야 할텐데…
요즈음 아일랜드 나잇 준비 중이라 이것이 끝나고 붓을 들 참입니다.
해마다 이 즈음에 집안을 총 점검합니다. 힘들지만 이때다 싶어 겸사겸사 덱에 페인트 칠도 다시 합니다.
밭의 수확물입니다. sweet pea는 정말 아삭아삭하며 단물이 쫄쫄 납니다.
흥보 놀부전 연습돌입 – 앞으로 네 번 더 연습이 있습니다.
책상 저 너머로 조롱박이 보입니다. 주걱,도깨비 방맹이, 제비, 보석 주머니, 커다란 박,
놀보 수염등등이 다 준비돼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