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광수교수가 만 65세로 9월5일 별세했다.
오래 전 밴쿠버에서 살때 밴쿠버 문학회 회원으로 활동할 당시였다.
회원 네 명이 돌아가면서 릴레이 소설을 썼는데 그 첫 번째를 쓴 회원이
하필이면 제목을 ‘제비’로 시작했고 그 내용이 번죽좋은 바람둥이 제비가
여자를 홀리 것이었다. 그 당시 제비족이 어리숙 한 유부녀를 꼬드겨 정을
나누고 그것을 미끼로 남편한테 알린다면서 돈을뜯어내고 공포에
떨게하는 일들이 많았다.
시애틀에서 그래이하운드를 타고 밴쿠버로 올라와서 날엽한 몸매무새와
그럴 듯한 말빨로 여자를 꼬시는 그런 내용이었는데 나도 글 쓰는 그 네 명 중에
한 명이었다. 일주일에 한 번씩 연재가 나갔는데 사람들은 내 차례를 기다리곤 했다.
그 이유는 다른 세 명은 싱겁게 그냥 수박 겉 핧기로 술술 넘어가갔기 때문이다.
나는 소설의 내용을 살려 좀 대범하게 표현하면서 사람들이 듣고 싶어하는
이야기를 짭짤하게 말 해주면서 이끌어 나갔다. 물론 이렇게 써도 될까?라는
머뭇거림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나는 문학작품이기 때문에 용기를 냈다.
세 명 중 한 명인 당시 한국일보 주필로 계시던 문인께 물었다.
“선생님 왜 선생님 답지않게 글을 빙빙둘러 쓰세요?”
“아, 나도 좀 팍팍 지르고 싶지만 집에 마누라 있고 주위 사람들 눈치도
있고해서지요. 나도 갑갑합니다. 으 흐 흐 흐.
그 릴레이 소설 ‘제비’를 마감하고 주위에 나를 좋아하는 어느분이
내게 붙여준 별명이 ‘마학신’이다. 내 한국 이름이 이학신인데 성을
마씨로 바꿔준 것이다. 지금도 그분과 그 주위에 친구들이 가끔씩 나를
마학신이라고 부르면서 까르르르 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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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다시는 ‘즐거운 사라’로 감옥을 들락거릴 일 없는 마교수님 평안히 잠드소서
인터넷에서 발췌한 글을 첨부한다.
1980년대와 1990년대 연세대를 다니면서 마 교수의 수업을 들은
사람들은 지금 오십줄에 들어섰거나 사십대 후반이다. 학교를 떠난 지
20년이 훌쩍 넘은 이들이 공통적으로 하는 말이 있다.
“젊은 시절 마광수 교수의 수업을 한 과목이라도 들었다는 게 자랑스럽다.
대학 운동권 일각에 주체사상이 파고들던 그 시점에 우리는 마 교수의 강의를
통해 인간의 본능, 성적 판타지, 에로티시즘에 처음으로 눈을 뜰 수 있었다.
마 교수가 아니었으면 그때 이념의 감옥에서 헤어나지 못했을 것이다. 지나고
보니 마 교수의 강의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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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 년 전에 심어놓은 등나무에서 며칠 전부터 꽃들이 피어나고있습니다.

등나무는 주로 보라색 꽃인데 이 것은 빨간색이라 매우 신기합니다.

등꽃.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