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어릴 때 많이 듣던 말 중에 이런 말이 있다.
‘결혼 할 대상을 고를 때 어른이 추천하는 사람과 하면 후회 안 한다.’
그렇다고 내가 그렇게 결혼 한 것은 아니다. 내가 선택한 사람과의 결혼은
집안 식구들이 모두다 반대했는데 결국 어른들의 판단이 옳았다는 것을
이제야 알게된다.
이제 결혼 한다고 하면 비슷한 조건을 가진 사람 둘이 있는데
한 사람이 돈이 더 있으면 나는 주저없이 돈 많은 사람한테로 달려간다.
남들이 나 보고 돈을 밝히는 사람으로 생각한다고 해도 상관없다.
돈 없어서 고생하며 살아본 내 경험으로는 돈 가지고 반반하게 사는 것이
훨씬 더 복 되다고 생각한다. 있어야 남에게 나누어주고 행복하다. 없으면
마음 뿐이고 남의 도움을 받을 생각이 간절하기 때문에 스스로 비관 스럽고
인격이고 나발이고 다 날라간다.
오늘 이틀째 일하는 새로뽑힌 남자 직원이 있다.
칼리지를 다니다가 파킹료가 너무 비싸서 중단하고 돈 벌기위해
직장을 구해온 것이다. 나이가 스무살인데 내년에 결혼 한다고 한다.
내가 깜짝 놀라서 “벌써? 빠르지 않아?” 라고 물으니
자기는 Okay라고 말 한다.
약혼자가 자기 보다 열 살 위라고 말해서 나는 또 깜짝 놀란다.
그리고 또 아이가 셋이란다.
나는 계속 놀라기만 한다.
다시 놀래는 얘기는 그녀는 핸디캡이라서 정부 보조를 받고 있단다.
먼저 남편에게 맞아 머리에 치명적인 상처를 입어 일 할 수 없는 처지란다.
“내가 나이가 열살 많다구?” 소리치니까 그렇다고 하면서 “결혼에 나이가 상관 있나요?” 한다.
나는 “그래도 적은 나이는 아니지” 하면서 입을 다물었다. 나이 + 모든 것이 결혼 조건에
마이너스 점수다. 이 아이가 미쳐도 단단히 미쳤다. 이 아이는 그 길로 들어서지 말아야 한다.
나는 왠만하면 사랑에 관해서는 통과 시키는 사람인데 그래도 이것은 아니라고 본다.
모든 환경이 절망인데 왜 스스로 웅덩이 속으로 저벅저벅 걸어들어가?
나이 스물에 볼 수 있는 세계는 아주 조그마하다.
나도 그 나이 즈음에는 많은 것을 볼 수 없었으니까.
딸아이의 말에 의하면 자기도 설흔 다섯을 넘기고 나니까 남자 보는 눈이
바로 떠 지더란다. “애궁 진작 엄마한테 말해주었어야지 요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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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교회에는 매주 이렇게 화려한 꽃을 무명으로 제공하는 분이 있다.
한 두 번도 아니고 매주 이렇게 정성스럽게 꽃을 꽂아 놓는지 정말 놀랍다.
아름다운 꽃을 보면서 예배를 드리는 주일 예배가 매우 귀하고 즐겁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