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에 시내 화방에 그림 물감을 사러갔다.
몇 년 전에 비싼 브랜드 ‘GAMBLIN’을 사다 쓰기 시작했는데 값이
너무 비싸서 색깔 별로 다 사다 쓰지는 못했고 중요한 색들만 사 오곤 했다.
오늘 필요한 색깔들 중 가장 필요한 색 Cerulean Blue Hue
큰 것을 집어 가격을 보았더니 하나에 100불이다. 네 가지 색을 사면
400불 + Tax 다. 아구머니나. 집었던 물감이 낸 손에서 스르르 빠져 나간다.
다음 가격을 집어오면서 “연필 좋다고 공부 잘하나?”며 스스로 위로해 본다.
옛날 우리 학교 다닐때 학년이 바뀔 때 마다 새 책을 척척 샀던 반 아이라고 공부 잘
한다는 보장이 없었다며 두번째 위로의 생각을 하면서 혼자 웃었다.
김홍도와 신윤복의 이야기가 나오는 책 ‘화원의 바람’을 읽어보니 당시 그림 물감
구하기란 하늘의 별 따기 만큼이나 어려웠다. 나무뿌리 말려 3 년은 걸려야 한 색깔을 만들
수 있었고 몇 안 되는 색깔도 중국에서 구해와야 했으므로 벼루와 먹으로 무채색의
그림이 주로 그려졌다. 종이 또한 얼마나 구하기 힘들었는지 모른다.
무수한 색깔을 파는 화방에가면 이것 저것 다 내 눈길을 잡아끈다.
옛날 화가들은 손으로 꼽을 수 있는 기본 색 몇개를 가지고 천가지의 색깔을 만들어
냈을 텐데, 어찌 됐는지 나는 여자들 백화점 가면 눈 돌아가듯 나는 화방에서 시간을
많이 끌면 돈을 더 쓰고 올 때가 종종 있다.
물감을 사 오는 날은 아주 기분이 좋다.
금방 쓰지 않아도 뚜껑을 열고 새로운 색깔과 마주치면 어디선가 좋은 그림이
뚝딱 떨어질 것 같은 느낌까지 온다.
요즈음 사람들은 옛 사람들보다 참 좋은 세상에 살고 있다고들 한다.
그림을 그리는 나는 더욱 더 좋은 세상에 살면서 물감도 마음대로 사서 쓰고
호사를 누리니 어찌 더 감사하지 않으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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