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니씨(맨 오른쪽)와 그분의 약혼녀인 Beth씨그리고 앨런 교장선생이
샵으로 방문왔다.
함께 샌드위치를 먹으면서 토니씨가 내게 들려준 아름다운 이야기를 소개한다.
“나는 작년 2월에 40년간 함께 동거동락한 아내를 천국으로 보내고 우울증에 걸려
매일 울고 있었어요. 그러던 중 내 친구가 전화 와서 뭐하냐고 묻더라구요. 난 지금
너무 슬퍼서 살고 싶지 않다고 말했지요. 그 친구가 그러지 말고 불쌍한 이웃을
돕고 보람있게 살고있는 앨런씨를 만나 보라고 했어요. 나는 친구의 말을 듣고
앨런씨를 그의 사무실에서 만났어요. 우린 함께 눈물을 흘리면서 이야기를 나누었어요.
나는 즉시 아프리카에 중학교 전체를 짓는일에 동참했고 그 학교는 죽은 아내 이름을
붙여주게 됐어요. 내 마음이 한결 가벼워 졌고 인터넷으로 앨런씨가 직접 그곳에서
내 아내 이름의 학교를 짓는 모습을 보면서 다시 힘을 얻게 되었지요.
그 뿐 아니라 근간에 이 처럼 멋진 여친을 만났어요. 우리 곧 결혼도 해요.
죽은 내 아내가 천국에서 질투 하지 않을 것 같애요.
중학교가 없는 가난한 나라에 학교를 건설해주었으니 고마워서 방긋 웃겠지요?
그의 모습은 천진하며 부드럽다. 금년 81세지만 꼬장한 할배 냄새가 안 난다.
전직을 물어보았더니 잠시 입을 다물고 있더니 말하기 시작한다.
난 신부였다우. 8년동안 그 어려운 공부를 마치고 3년 신부노릇하고 사임했어요.
신부 복을 벗은 가장 큰 이유는 무엇이냐고 물었더니 ‘외로움’이라고 말한다.
내 나이 설흔 다섯에 결정했어요. 함께 공부했던 친구 신부들중 상당수가 알콜 중독자가
되었고 외로움때문에 인생이 그리 행복하지 못했어요. 신부의 가장 힘든 부분이
홀로 살아가는 외로움을 극복하는 것인줄 나는 전혀 몰랐어요. 바보처럼.
그 이후 정부기관에서 청 소년들의 직장을 돕는 카운슬러로 오랫동안 일했어요.
나는 그때 결정을 한번도 후회해 본 적없다우.
이제 나의 남은 시간이 조금 밖에 안되기 때문에 하루하루가 아쉬워요.
우리 우주속에 동시대에 살아가는 사람들 다 함께 돕고 가야해요. 그것이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사명 아닌가 싶어요. 앨런씨를 만난것은 내게 참으로 복된 일이었어요.
그리고 당신같은 화가를 만나서 너무 기뻐요. 이렇게 일하고 언제 그림 그리죠?
돈이란 것은 정말 우리가 생각하는 것 만큼 중요한 것이 아니예요.
사랑
우린 다 서로 사랑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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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분들은 다 함께 금년 8월에 아프리카 탄자니아로 향합니다.
본인들이 도네션 해서 지은 학교와 교실들을 둘러보고 한상영 선생님은
부경대학 영문학 박양근 교수와함께 킬리만자로행도 예약되어 있습니다.
잘 다녀오시도록 건투를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