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늘아이도 필시 울면서 일 가고 있겠지.
손녀가 아침에 엄마와 떨어지는 것을 알고 눈물을 글썽인다.
‘바이’는 언제 배웠는지 10개월 된 고사리 손으로 엄마 잘 다녀오라고 흔든다.
며늘 아이가 문을 닫고 나가는데 내 눈에서 눈물이 주르르 흐른다.
손녀의 아빠인 내 아들이 어릴때 나도 직장 가면서 버스 속에서 남 몰래 눈물
흘린적이 많았다. 엄마는 늘 아기와 함께 있고 싶은거다. 아기가 그렇게 원하는 것 만큼.
비록 내 아들이 지금 엄마를 시쿤둥하게 쳐다보기는 하지만 그때는 그랬었다.
저녁을 내가 하려고 하니 아들이 자기가 일 다녀와서 한다며 아이만 봐 달라며 나간다.
자식이 그렇게 중요한 것이다. 옛날 같으면 엄마가 왔으니 당연 맛있는 요리를
기대 하겠건만 이제는 자기보다 자식을 생각하는 마음이 자연스럽게 드는 것이다.
아기를 본 적이 너무 오래되어 다 까먹었나? 요령없이 아이 뒤를 좆아다니다 12시 넘어서
아침을 먹게됐다. 화장실 가는 것 강아지 쉬 시키는 것도 다 뒷전이다.
아이가 잠든 틈을 타서 아침을 먹는데 어디에 무엇이 들어있는지 잘 몰라서
눈에 보이는 것만 먹게되니 맨 토스트 두쪽과 우유 한잔으로 두 끼를 떼운 셈이다.
저녁에 며늘아이가 먼저 퇴근 했는데 아침 점심을 먹을 시간도 없이 회의가 많았다면서
피넛버터에 토스트를 해 먹는다. 삶이 옛날보다 조금 풍요로워 지기는 했지만
바쁘고 힘들게 사는 것은 요즈음 젊은 아이들도 우리 때와 별 다름없다.
며늘아이는 토요일이지만 집에서 할 직장일이 아직 남아 있다고 하면서도
손녀 수영 시키러간다며 내게 사진 찍는것을 부탁한다. 일찍 패리를 타고 오려던 계획을
조금 미루고 며늘아이 청을 들어주었다. 한 순간이라도 놓치지 않고 자식을위해
무엇을 더 해 줄까 생각하는 이 세상의 많은 부모들.
부모는 다 그래
그래서 자식을 낳아봐야 어른이 된다고 했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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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me sweet home~
집으로 돌아오는 국경은 무난 했습니다. 기다리는 줄도 그리 길지 않았구요.
창구에서 여자 오피서가 내게 물었습니다. 미국에 몇일 나갔다 왔냐구요.
삼일 이라고 말하니 무엇을 사 왔냐고 물었습니다. 미술재료 130불어치를 샀다고 말 했더니
편안하게 주말 보내라면서 상냥하게 웃어주었습니다. 얼굴까지 미인인 오피서가
나갈때 상한 마음까지 다 치유해 주었습니다. Home Sweet Home !
패리 터미널에 도착한 시간은 6시15분이었고 7시 패리를 타게 되었습니다.
하늘 면적이 이렇게 넓은 줄은 대 도시를 며칠 다녀온 후에 알게 됐습니다.
고요한 섬이 아름답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