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마움과 동시에 약간 놀래는 듯 하다. 이런 부탁을 하면 우선 한번쯤 뒤로 빼던가 아니면
아예 이도 못 들어가게 처음부터 못한다며 못을 박기 때문이다.
“아 정말 고마워요.”라며 전화 건 분이 말한다.
내가 “뭘요. 그리 힘든 일 아닌 것 같고 또 안 하면 엄마 한테 혼나기 때문이지요.”라 말하니
“어머나 아직 어머니가 살아계시나요?”
“아니요. 천국에서 다 보고 계시니까요. 엄마는 언제나 내게 누가 그런 것 부탁하면
거절하지 말고 용기있게 나가서 일 하라고 말했어요.”
“어머, 정말 훌륭한 어머니셨네요. 난 지금도 수줍음이 많아서 그런걸 잘 못해요.”
이런저런 얘기끝에 자기는 막내로 태어났는데 입 하나가 더 늘어난다고 위에 형제들은
그리 반가워 하지 않았다고 한다. 동시대에 살아온 나는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알것 같다.
나도 막내로 태어났는데 엄마 등에 매달려 함께 고생하는 내 모습을 보면서
동네 사람들이 “자 만 안 태어났어도 지 애미 덜 고생하제…” 했단다.
이 처럼 그 당시 태어난 사람들 가운데 막내는 까딱하면 이 세상 구경을
못 할 뻔 했다. 먹을 것은 모자라고 자식은 많아 부엌에서 엄마는 전전긍긍했고
굶기지 않고 공부시켜 준 것으로 그나마 감사한 시절이었다.
전화 하신분 부모님은 상당한 교육을 받으신 분이었지만 뒤 늦게 임신인 것을 알고
자연으로 떨어지게 하려고 높은 곳에서 뛰어 내리기도하고 여러가지 방법을
시도를 해 보았단다. 이런 얘기는 이 분만의 스토리가 아니다. 옛날에는
이런 얘기는 한 집 걸러 듣던 얘기다.
만약 이 분이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훌륭한 의사 자녀 세 명은 없었을 것이다.
이 땅에 필요한 사람이기 때문에 엄마를 보내주었고 그를 통해 아름다운 가정을 만들어
명석한 자녀를 갖게 되는 하나님의 계획이 아닐까 싶다.
태어나야 할 사람은 꼭 태어나게 되어있다.
우리는 어떤 경우에도 희망을 포기해서는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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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의과대학에서 교수가 학생들에게 질문을 했다.
“한 부부가 있는데 남편은 매독에 걸려있고 아내는 심한 폐결핵에 걸려 있습니다.
이 가정에는 아이가 이미 넷이나 있었는데 한 아이는 한 달 전에 병으로 죽었고 남은
세 아이들도 모두 결핵으로 누워있어 살아날 가망이 거의 없다고 합니다. 이 심한 폐결핵에
걸려있는 부인이 또다시 임신했는데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그랬더니 한 학생이 손을 번쩍 들고 답변했다.
“낙태수술을 해야 합니다”
교수는 그 학생을 보며 이렇게 말했다.
“방금 자네는 인류 최고의 위대한 작곡가 베토벤을 죽였네”
이 불행한 환경 가운데서 다섯번째 아이로 태어난 아이가 자라서 저 위대한 음악의 성인(聖人)
악성(樂聖) 베토벤이 된다. 오늘날 의료적 판단으로는 낙태해야 한다고 결정내릴지 모를 그 아이가
음악계의 최고의 거성이 되리라고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
<인터넷 강현의 블러그에서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