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스팩터가 다녀간 날이다. 우리는 매월 최고의 평가를 받는 샵이다.
직원들은 정말로 누가 뭐라고 말 할 시간도 없이 매 순간 각자 샵에 부족한
부분들을 쓸고 닦고 채우고 규정에 어긋나지 않게 정리한다.
또한 지난달에 적어놓고간 수정해야 할 부분들을 다시 들여다 보면서 이번달에도
감점을 받지 않기위해 노력한다. 나도 어제 밤에 다시 나가 총 정리하며 아침에도 일찍
출근했다. “당신네 가게오면 내가 할 일이 없어 심심하다.”는 농담을 들으니 내 어깨가
잠시 으슥해진다. 인스팩터가 적어 놓고간 “고객관리도 매우 우수하다”는 평가를 읽으면서
모든 직원들이 와 와~~ 손뼉을 치며 좋아한다.
이처럼 최고의 평가를 받아도 집에오면 힘이 쭈욱 빠지고 아무일도 못한다.
한 달을 넘기는 숨 고르기다. 간단히 카레로 저녁을 먹고 빈둥빈둥 거리면서
다음 그림 그릴 소재를 찾기위해 소장해 두었던 CD를 하나씩 꺼내어 보기 시작했다.
어느 사진은 내 얼굴이 들어있는데 도무지 어디에서 무엇을 했던 장면인지 알 수가 없다.
주위에 함께 찍은 사람들을 자세히보니 아는 사람이 딱 한 사람 밖에 없고 다들 모르는
사람 들이다. 참 이상도 하다. 내가 어떻게 이런 사람들과 함께 사진을 찍었을까?
고개를 갸우뚱하면서 오래 전 필림을 되 돌려 본다.
사진 들 중에는 반가운 얼굴들도 보이고 그렇지 않은 사람도 눈에 띈다.
내가 살던 집 정원 텃 밭에서 기르던 수박과 호박넝쿨을 보니 반갑다.
내 키 두 배나 되는 해바라기 무리들, 이제 언제 다시 그 많은 해바라기들을 길러볼 수
있을까? 아쉽운 마음이다.
그러던 중 9년 전 아는 꼬마 여아들과 함께 부둣가로 바람을 쏘이로 갔었는데
여섯 살 난 여아가 내게 선물로 준 수공예 품이 내 손에 들려있다. 까마득히 잊고 있었던
그 날의 정경이 되살아 난다.
어머머, 나도 9년 전에는 꽃띄였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