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다 이야기를 소개한다.
아이다는 내가 십 년 전에 만난 독일 작다다. 포토리코가 고향인데
아버지는 유태인 어머니는 미국인 사이에서 태어난 장녀. 학교 다닐 때 수재였고
특해 과학 수학 화학 방면에 탁월 했다는데 수석을 놓친적이 없었다고 한다.
대학에서는 History of Art에 관한 degree를 두개나 딴 재원이다. 여동생들도 모두 닥터.
머리가 월등한게 분명한 가게. 부러움의 대상이다.
유럽과 미국에서 전시 때 마다 만나곤 했지만 지역적으로 너무 멀기 때문에
그리 가깝지는 않았다. 그녀가 미국 우리집에 여러 작가들 초청시에 한번 다녀간 적이
있다. 간간이 전시회 소식을 통해 그녀가 어느지역에서 전시한다는 것 쯤은
눈으로 익혀 알고 있었고 그녀 또한 나의 소문을 그정도로 알고 있었다.
어번에 전혀 뜻 밖에 나를 만나서 얼마나 반가워하는지 모른다. 우리 두 사람이
알고 있는 작가들 얘기를 꺼내 놓고 누구는 벌써 죽었고 누구는 너무 까칠해서
상대 안 한다, 등등 수다도 떨면서 작가로서의 기쁨과 고뇌를 많이 나누게 되었다.
누구든지 소설 몇 권 쯤을 쓸 재료가 있긴 하지만 평범하지 않아야 독자들의 마음을
사로 잡을 수 있둣아 이 여인의 특별한 얘기를 좀 해 볼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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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다 나는 철 없는 시절에 나 보다 더 철없는 남자를 만나 밤 마다 서로의
욕구를 만족 시키면서 아이를 만들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너무나 바보 스러웠고
부끄러운 일이었다. 그때는 내가 가는 길이 누구에게 피해를 주는 것도 아니고 또
나는 그 남자를 너무나 사랑 한다고 착각했기 때문에 내 선책이 옳다고 생각했다.
공부를 많이 한 나와 고등 학교만 졸업한 남자와 결국은 이념과 사상의 차이 및
삶의 목료가 너무 다른 것을 알게됐다. 아이는 더 낳았지만 살지 못했고 지금 장성한
아들 하나 겨우 건졌다. 나는 아이를 택해서 길렀는데 우리 친정은 상당히
부유해서 내가 하고 싶은 공부나 무엇이든지 다 뒷 바라지를 받을 수 있었다.
아이도 물론 그 혜택을 받으면서 잘 성장해 주었다.
아이가 다섯 살 때였다. 내 주위에는 그럭저력 남자들이 맴 돌았다. 나는 춤추기를
좋아했고 영혼은 자유스러워 더 이상 결혼은 생각하지 않고있었다.
하루는 아들아이가 심각한 표정으로 내게 말했다. “내가 학교 가면 다 아버지가
있는데 왜 나는 없냐? 엄마가 알고 있는 남자 중에서 그 사람 키가 작은 그 분이
나는 제일 마음에 드는데 꼭 그 분하고 결혼해서 그가 내 아버지가 되게 해 달라.”며
울고 애원 했다.
기막힌 청이었다.
꼬마가 그것도 자기가 택해서 엄마에게 결혼 하라고 한다. 자기에게 아빠가 필요하다면서.
그 이후로 나의 고민은 시작됐다. 그 남자는 진즉에 나를 좋아하고 있었던 것 같다.
고민을 해 보았자 소용없었다. 나는 아들을위해 그 길을 선책 할 수 밖에는.
아들이 들러리를 서 주었던 그 결혼식을 우리 세 사람은 기억하면서 행복해 한다.
그때의 선택은 내 인생에 풍요로움을 가져다 주었고 내가 자우롭게 그림을 그릴 수 있는
커다란 움막이 되어주고 있다.
물론 아들은 지금 마흔살, 중년의 나이다. 지금도 나와는 통화 안 해도 그와는 너무나
다정하게 얘기한다. 어느날 친 아버지가 아들을 만나기 위해 연락 했는데 아들의 대답은
이랬다. “내게는 단 한 명의 아버가 있을 뿐이다. 그의 이름 Svein.”
To be continu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