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09.02 18:52:44 (*.69.35.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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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신지요? 제 생활에 약간의 변화가 있어서 그간 소식을 드리지 못했습니다. 혹시 들어 셨는지 모르지만, 지금은 제가 백수 실업자로 지내고 있습니다. 무슨 소린고 하면, 제가 올해 6월말로 교회일을 그만 두고, 카톨릭 병원에 병원목사의 한 사람으로 취직을 했습니다만, 그것도 그만 두고 나와서 한달 넘도록 집에서 놀고 있습니다.
교회에서 나온 이유는 여러 가지 있겠으나, 한 곳에 11년있었으니, 떠날 때도 되었는데, 몇몇 교인들이 저의 설교가 마음에 안든다며 불평을 널어 놓기 시작한 일이 있었습니다. 제가 “동성애자들도 하나님이 사랑하는 자녀들이니, 그들을 정죄하기 하기 보다 있는 모습 그대로 받아 들여야 한다고 본다”고 했더니, 일부 교인들이 “무슨 헛소리냐? 우리는 전통적인 교회의 가르침을 원한다”고 하며 저를 몰아 내려고 했습니다.
사실, 저는 동성연애를 반대하는 편이지만, 동성연애 하는 사람들을 정죄하는 것도 반대하는 입장이라, 우리 기독교인들은 예수님의 본을 받아, “동성애에 대해 침묵하는 것”이 더 낫지 않나 생각하는 편입니다. 예수님은 동성애자들에 대해 가타부타 입도 뻥긋하신 일이 없는 걸로 성경에 나와 있던데, 예수님을 따르는 예수교인들이 주제넘게 동성애에 대해 “옳다, 그러다” 말 할 자격이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하여간 미국인 교회 목회를 16년 한 후, 교회를 떠났습니다. 교회를 떠나면서 병원 원목으로 취직을 하니 교회 보다 봉급을 많이 주어서 한동안은 의기양양, 기고만장이었습니다. “나를 싫어 하던 교인들아, 날 좀 봐라. 이렇게 돈 잘 벌면서 잘 먹고 잘 산다!”하면서 한달 동안 지냈습니다.
나는 병원에서 최소한 10년은 일하리라 보고 느긋하게 천천히 병원일을 배워 가리라고 생각했습니다. 미국말에 “하나님을 웃기려거던, 하나님께 너의 미래 계획을 호언장담해 보라” ( If you want to make God laugh, tell him your plans.)는 말이 있더군요. 내가 앞으로 10년 동안 병원에서 일할 계획을 세우고, 아내에게 “새해부터는 생활비를 듬뿍 더 주겠다”하며 큰 소리를 쳤습니다.
그런데, 한달만에 병원에서 쫓겨 났습니다. 내 생각으로는 말도 안 되는 시시한 것을 트집을 잡아서 내 윗사람이 나에게, “병원 근무 부적격자”라며 나를 해고시키겠다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교회에서 목사로만 16년 지내던 사람이 새로운 근무지인 병원에 온지 한달밖에 안되어서 어리벙벙해 있으면서 차츰 일을 배워간다고 생각했는데, 나의 상급자는 내가 실수가 많아서 도무지 병원에서 안심하고 일을 시킬 수가 없다고 한 것입니다.
나는 내 실수를 지적하는 내 상급자 채플린에게 잘 보이고자, 점심시간에 식당에 점심도 먹으러 가지 않고, 화장실 가는 시간도 아껴서 열심히 일을 하고 업무를 배워 간다고 생각했는데, 갑자기 일을 그만 두라니, 어안이 벙벙해 졌습니다.
나는 십년이상 랩탑 컴퓨터만 써 오다가, 병원 사무실에 있는 데스크 탑 컴퓨터의 자판을 쓰려니 타자가 좀 더뎠습니다. 어느날 환자의 교회이름을 컴퓨터에 입력하는데 환자가 교회를 안 나간지 수십년이 되어 교회와 동네이름이 불일치 해서 내가 어찌해야 할 지 몰라 경미한 실수가 있었던 모양인데, 내 실수로 삼년간의 기록이 엉망이 되었다고 몰아 부쳤습니다.
나를 컴퓨터를 전혀 모르는 바보취급하고 생사람 잡는 것 처럼 느꼈지만, 저는 상급자에게 말대꾸 하기 보다, “몰랐다. 잘 못했다. 앞으로 잘 하겠다.”고 인정을 하면 넘어 갈 줄 알았는데, 그 일로 병원일을 그만 두게 될지는 몰랐습니다.
물론, 저의 상급자는 제가 보기에는 별로 중요하지도 않은 저의 사소한 잘못을 종이에 다 기록해 놓고, 저의 “부당해고”에 대한 반격에 만반의 준비를 다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저는 해고를 당하는 것보다는 스스로 사직하는 것이 낫다는 것을 들은 기억이 있어서, 사직하겠다고 나온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한달을 집에서 골프나 치며 빈둥빈둥 놀았습니다. 금새 병원 원목자리나 호스피스 채플린 자리가 되겠지 생각하며 여러 군데 원서를 내었지만, 일하러 오라는데 없었습니다.
하는 수 없이, 임시직 직원 알선 센터에 갔더니, 소시지 포장 공장에 가서 한 시간에 10불 줄테니 일하겠느냐고 묻더군요. 아내는 저에게, “돈은 많이 못 벌어도 좋으니, 집에서 빈둥빈둥 노는 것 보다 낫지 않느냐?”고 일을 해 보라고 하더군요.
저는 아내가 저에게 “당신 같이 훌륭한 사람이 시시하게 한 시간 10불 벌려고 공장에 나가는 것을 볼 수 없다. 차라리 집에서 쉬면서 베스트 셀러를 써서 백만불을 버는 게 낫다.”고 해 줄 줄 알았는데 실망했습니다.
그래서, 내일 부터 소시지 가공공장에 가서 포장일을 하게 됩니다. 사실, 저는 예전에 한국인 가게에서 한시간에 5불받고 담배심부름, 맥주 심부름도 해 보고, 뉴욕의 맨하탄 거리를 자전거로 누비며 한 건당 2불을 받고 배달일도 해 본 적이 있습니다. 영주권이 없어서 불법 노동자였기 때문에 한인이 운영하는 쌘드위치 가게에서 한 시간에 5불 받고 일한 때도 있습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행동이 굼뜨고 똑똑한 데가 없어서 주인한테 “답답해서 일을 못 시켜 먹겠다”하면서 이틀만에 해고당한 일도 있습니다. 이에 비하면, 우리 미국인 교인들이 저에게 11년간 목사로 일할 수 있도록 참아준 것이 고맙게 느껴 집니다.
저는 앞으로 몇달간 소시지 공장에서 일한 후, 내년에 다시 교단의 파송을 받아서 미국인 교회에 목사로 일하러 돌아갈 예정입니다. 인간의 일은 이제 잘 모르겠습니다. 내일 일도 모르는 것이 인생인데, 일년 앞의 일을 어찌 장담할 수 있겠습니까?
다행히, 저는 건강한 편이고, 아내가 많이 도와주고 있고, 시민권도 있고, 방세를 내지 않아도 되고, 내년에 목회지로 돌아갈 가망성도 많으니, 예전에 차도 없고, 영주권도 없고, 아내도 없이 혼자서 막막해 하던 때에 비해 훨씬 나은 형편에 있습니다.
다만, 왜 일부 교인들이 나를 싫어 했을까? 왜 내 상급자는 나를 믿지 못했을까 생각해 보니, 내게도 문제가 있다는 자각이 듭니다. 아내는 내가 “주의력 결핍장애(Attention Deficit Disorder)”가 있는 것 같다고 합니다. 생각해 보니, 옳은 관찰인 것 같습니다. 학교다닐 때 집중력을 요구하는 수학공부가 그렇게 싫었고, 요즘도 문을 열었다가 닫는 것을 까 먹고, 돌아가신 어머니가 나에게, “도무지 야무진데가 없다.”고 하시던 말씀도 기억납니다.
교회에서도 성공을 못해서 쫓겨나고, 병원에서도 성공을 못하고 쫓겨나고, 이제 공장으로 일하러 가는데, 이번에는 딱 적성에 맞겠다는 생각으로 희망에 부풀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