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09.11 22:36:51 (*.69.35.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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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년전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던 때 우리 옆집에 앰뷸런스와 경찰차가 온 적이 있었습니다. 나중에 들어 보니, 그 집에 살던 40대의 백인 남자가 목을 매고 자살을 했다는 것이었습니다. 이유인즉슨, 그 남자는 당시 직장을 잃고 생활이 어려워 지자 엎친데 덮친 격으로 아내가 이혼을 요구해 와서 고민을 하다가 집에 있던 지하실에 내려가 목을 매고 자살을 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아내는 동네사람보기 창피했던지, 중학교에 다니던 아들을 데리고 큰 도시로 이사를 가 버리고 그 집은 흉가가 되어 2년동안 팔리지 않다가 나중에 헐값에 지금 살고 있는 젊은 부부에게 팔렸습니다.
내가 교회에서 쫓겨나고 다시 얻은 직장인 병원에서도 한달 만에 쫓겨 나자, 주변에서 실업자가 된 내가 아내에게도 쫓겨나 이혼을 당하면 어쩌나 하는 염려도 해 주시는데, 다행히 저는 꺼떡 없습니다.
씬디는 목사신분인 저랑 결혼한지 이제 12년이 되는데, 갑자기 제가 실업자가 되었다가 지금은 소시지 공장에서 포장일을 하는 임시 공돌이가 된 제가 사람들 보기에 부끄럽지도 않은 모양입니다. 아내는, 저와는 달리, 얼굴이 두껍고 배짱이 센 편입니다. 저는 다른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볼까 염려를 많이 하는 편인데, 아내는 다른 사람들의 생각에 대해 신경을 덜 쓰는 편입니다.
아내가 공립학교에서 30년 이상 근무한 선생이라 직장이 든든해서 제가 굶을 일이 없으며, 선생 연금이 좋기 때문에, 은퇴해도 건강만 유지되면 그런데로 살아 갈 수 있습니다.
어제는 소시지공장에 처음 출근을 했습니다. 먹는 음식을 만드는 공장이라 위생검열이 철저하더군요. 마치 군대 훈련소나 유태인 수용소 같은 분위기를 느꼈습니다. 출근부에 싸인을 하고, 작업반장의 지시를 받아서 작업장으로 들어 갔습니다. 한 50여명이 한 조가 되어 일을 하는데, 머리에는 그물망을 쓰고 하얀 색 정육점 가운을 입고 콘베이어 벨트에서 미끄러 지듯 나오는 포장된 소시지에 상표를 씌우는 일을 했습니다.
저는 원래 겁이 많고, 새로운 곳에 적응을 하는데 시간이 걸리는 편이라 옆에 있던 덩치 큰 젊은 여자에게 “여기서 일한지 얼마되느냐?”고 물어 보았습니다. 자기도 한달 밖에 안 되었다고 하면서 “여기 일은 어려운게 없다. 아무 염려할 것 없다”하면서 저를 안심시켜 주더군요.
임시직공들은 20대에서 60대 후반에 이르는 사람들로 절반은 히스패닉 사람들이고, 흑인도 몇명, 동양인도 몇명있고, 백인들도 간간이 있었습니다. 두시간 정도 일한 뒤 15분간 휴식시간을 주더군요. 따로 식사시간이 없기 때문에 휴게실에 앉아서 집에서 가져온 점심을 먹는 시간입니다. 히스패닉 중년 아저씨가 또르띠아라는 부침개 빵에다 도시락 통에 있는 소고기 고기국물을 찍어 먹는데 히스패닉 사람들에게 또르띠아라는 부침개 빵은 한국사람들에게 밥처럼 기본음식인 모양입니다.
한국의 청양고추처럼 작고 매워 보이는 칠리라는 울긋푸릇한 고추를 한 봉지 갖고 있길래 나도 하나 맛을 보아도 되느냐고 물어 보았더니, 먹어 보라고 하더군요. 뒷맛이 은근히 맵싹한 고추맛인데, 그 매운 맛 때문인지 그 히스패닉 아저씨는 귓뒤에 땀에 맺혀 있더군요. 강한 히스패닉 발음으로 서툰 영어를 하는 그 사람에게, “어느 나라 사람이냐?”고 물어 보았더니, “캐나다에서 왔다.”하면서 웃더군요. 옆에 있던 사람들이 다 웃었습니다. 그 사람이 농담으로 거짓말을 한 것이었습니다. 히스패닉처럼 생기고 히스패닉처럼 말하는 자신이 캐나다에서 오지 않은 것은 당연하지만, 사람들을 웃길려고 농담을 했던 것입니다. 그러면서 작은 목소리로, “멕시코에서 왔다.”고 하더군요. 미국에서 무시당하기 쉬운 가난한 나라 멕시코 출신의 비애를 우스개 농담으로 승화시키는 그 사람의 낙천적이고 밝은 성품과 유머감각에 호감이 금새 갔습니다.
이름이 무어냐고 물어 보았더니, “피터”라고 하더군요. 또 농담이었습니다. 주로 백인들의 이름인 “피터”가 멕시칸인 자기에게 어울리지 않는 이름인줄 알면서 일부러 웃기려고 농담을 했던 것입니다. 그러고는 다시, “헥토”가 자기 이름이라고 알려 주었습니다. 나는 멕시코인이 이렇게 농담을 잘 하고 재미있는 사람인 줄은 처음 알았습니다. 그래서 헥토에게, “당신은 참 재미있고 행복한 사람 멕시칸이군요.”했더니, “All the time” (나는 항상 행복해)라고 하더군요.
사실 교회와 병원에서 근무할 때는 좀 근엄하고 젊쟎은 분위기였는데, 인생막바닥인 공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오히려 더 농담도 잘 하고 잘 웃는 것을 보고 좀 놀랐습니다. 콘베이어 벨트에서 쉴 새 없이 밀려 오는 쏘시지에 상표를 끼우는 일을 하는 가운데 옆에 서서 일하는 사람들과 말을 하며 연신 웃는 사람들을 보게 됩니다.
내 앞에 서 있는 젊은 여자는 아메리칸 인디언이라고 하는데, 자기 애인이 감옥에 가 있어서 자기는 여기에 일하러 왔노라고 하면서 뭐가 그리 즐거운지 일하면서 “하하하, 호호호”하면서 웃습니다. 내 옆에서 일하는 젊쟎게 생긴 백인 남자는 현재 63세인데, 4년전에 35년동안 함께 살던 자기 아내가 암으로 죽고 혼자 되었는데, 자기는 의료보험이 없어서 심장치료를 받은 치료비 청구서 빚이 6천불이상 있어서 그 빚을 갚기 위해 이 일을 하러 나왔다고 하더군요.
나는 오바바 케어 보험도 없느냐고 물었더니, 그것도 돈이 없어서 들지 못했다고 하더군요. 참 젊쟎고 착해 보이는 백인 아저씨가 돈이 없어 의료보험도 없이 산다는 말에 충격을 받았습니다.
Amanda라는 젊은 여자는 원래 캘리포니아의 쌘 버내디노에서 살았는데, 살던 동네가 갱단과 마약이 판치는 동네라 고등학교 다닐 때 사귀던 남자친구랑 위스칸신으로 이사를 와서 아들을 낳고 같이 살았는데, 그 남자가 바람을 피우는 바람에 헤어지고, 지금은 두번째 남자친구와 같이 살고 있는데, 그에게서 둘째 아들을 낳았다고 하더군요. 제가 아이는 누가 돌보느냐고 물었더니, 베이비 시터에게 맡기는데, 하루에 40불을 준다고 하더군요. 내가 한시간에 10불 받으면서 일하면 하루에 버는 돈의 반정도 애기 돌보아 주는 사람에게 주는게 아니냐고 물으니, 그래서 주말에 잔업을 하고, 또 남자친구가 일하기를 싫어하는 게으른 사람이기 때문에, 집에서 애 보는 일을 도와 준다고 하더군요.
작업반장이 저에게 소시지 박스를 운반하는 일을 하러 가겠느냐고 물었습니다. 나는 순종하며 가겠다고 하니, 콘베이어 벨트에서 미끄러져 나오는 소시지 박스를 차곡차곡 쌓는 일을 하는데 처음에는 “잘 됐다. 운동할 시간도 없는데, 운동하고 돈벌고 꿩먹고 알먹기다”고 생각하며 “나는 운동겸 박스 운반하는 일이 좋다”고 하니, 옆에 있던 Dana라는 백인 노인 일꾼에게 얘길하니, “Wait” (좀 더 기다려 봐라. 니가 한 말이 쏙 들어갈끼다.)하더군요. 아닌게 아니라 박스가 쉴새 없이 밀려 오고, 소시지가 꽉찬 박스를 8층으로 쌓는 일이 나중에 힘에 부쳤습니다. 밤 10시 반에 일을 마치고 너무 피곤하여 차안에서 10분을 쉰 후에야 운전을 해서 집에 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