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09.21 22:17:48 (*.69.35.119)

 

제가 왜 “세상사는 이야기”라는 글을 쓰는가 하면 저를 평소에 사랑해 주시고 격려해 주시는 캘리포니아에

사시는 안권사님이라는 분이 제게 “왜 요즘은 글을 안 보내어 오느냐? 글을 써서 보내면 좋겠다”는 말씀에

힘입어 그저 생각나는대로 심심풀이로 안부 전할겸 써서 주변의 친지들에게 보여 보는 것입니다. 편리한

이멜과 페이스북으로 제 글을 나누면 몇몇분들은 친절하게 답장을 보내어 주시는데, 그 중에는 멀리 필리핀,

중국, 캐나다, 뉴질랜드, 태국, 한국으로 부터도 답장이 오니 소식을 주고 받는 재미가 솔솔 합니다.

 

어제도 소시지 공장에 일하러 갔습니다. 음식을 만드는 공장이라 일부 작업장은 냉장실입니다. 실내온도가

영상 3도 정도 되니 좀 춥습니다. 그러니 일하는 사람들은 모두 스웨트나 두툼한 겨울 외투를 입고 그 위에

하얀 위생복 가운과 머리에 씌우는 그물망 모자 그리고 기계소리때문에 귀에는 작은 귀마개를 끼우고 일을 합니다.

 

그저 단순노동으로 하루에 8시간씩 보내는 것이 아까워 이어폰을 끼고 음악을 듣거나 스마트 폰으로 소설낭독하는

것을 들으면 영어청취력향상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어서 작업반장에게 작업중에 스마트 폰으로 음악을 들어도

되느냐고 물어 보았더니, “안된다. 나도 음악 듣고 싶지만 작업중에는 음악을 듣지 못하게 되어 있다”고 하더군요.

하기야 콘베이어 벨트가 쉴 새 없이 돌아가는 작업중에 음악을 듣는데 신경을 뺏기면 일하는데 정신집중을 못해서

실수가 생기거나 위험할 수도 있으니, 고용주 입장에서는 음악을 못 듣게 하는 것이 더 나을 것 같습니다.

 

목사로 사무실에 앉아 있을 때는 음악을 듣거나, 컴퓨터로 신문을 보거나 하는 자유를 왕창 누렸으나,이제 공장에서

시간당 10불을 벌기 위해서 내 자유를 제한 당해야 하니 자본주의 사회의 현대판 노예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다행히 내가 하기 싫으면 이 일을 언제든지 그만 둘 수 있는 자유가 있지만, 일을 해서 적은 돈이라도 벌어서 남에게

아쉬운 소리하지 않고 자립해서 사는 것이 더 나은 선택이기에 자발적으로 이 일을 하고 있습니다.

 

일을 하고 싶어도 일자리가 없어서 놀고 있는 사람들도 있고, 일을 하고 싶어도 건강이 허락하지 않아 일을 할 수 없는

사람들도 있으니, 일자리가 있고 건강이 허락하여 일을 할 수 있는 것만 해도 감사해야 한다는 생각에 이르게 됩니다.

 

8시간의 작업시간중 2시간 정도 일하면 15분간의 휴식시간이 주어집니다. 그 휴식시간에는 작업복을 벗어 놓고, 집에서

가져온 점심을 꺼내어 먹는데, 가만히 보면 다양한 음식문화가 공존함을 발견하게 됩니다. 히스패닉 계통의 노동자들은

밀가루 부침개인 또르띠아나 옥수수 잎으로 싼 또말리인가 하는 것을 주로 먹고, 미국사람들은 주로 햄 쌘드위치, 저는

한국 식료품에서 산 말린 곶감 이나 한국산 비스켓 고소미등을 먹을 때가 있습니다.

 

오늘도 휴게실에 들어 가니 사람들이 가자 점심을 꺼내어 먹는 것을 보았습니다. 저는 사람좋게 생긴 멕시칸인 헥토 옆에

앉았습니다. 헥토는 늘 우스개 잘 하는 유쾌한 사람이라 저는 그 옆에 앉아서 같이 웃기를 좋아 합니다. 미국에 온지 2년밖에

되지 않아 영어가 서툰 헥토는 저를 보자 인삿말인지 농담인지 스페인어로, “재미있는 중국사람이 왔구나!”하고 말했습니다.

 

제가 “나는 꼬레아노, 한국사람이다.”고 했더니, 나보고 “우리 눈에는 중국사람, 한국사람, 일본사람 다 똑 같아 보인다.

”하면서 두 손으로  자기 눈을 옆으로 찢으며, 동양사람들의 눈이 찢으진 것을 놀리는 듯 했습니다. 그러자 옆에 있던

히스패닉 사람들이 함께 웃었습니다.

 

저는 좀 불쾌했지만, 어떻게 반응을 보여야 할 지 몰라 그냥 슬며시 따라 웃으며 넘어 가기로 했습니다. 내가 이소룡이나

성룡처럼 무술을 잘 한다면, 헥토의 멱살을 잡고, “동양사람의 찢으진 눈을 놀리지 마라. 눈이 작아도 볼 것은 다 본다.

니가 내 눈 찢으진데 대해 보태어 준 것이 있느냐? 내 성질 건드리면, 나 영화배우 최수종처럼 동그랗고 큰 눈이 되도록

쌍꺼풀 수술하는 일이 생길 수도 있다.”하고 대차게 나갔을텐데, 그랬다가 싸움이 나면 내 만수무강에 지장이 있을 것 같아 그만 두었습니다.

 

그러자 헥토는 나가면서 나보고 들으라고 그러는지, “치노또(Chinoto: 작은 중국사람)”이라 하며 지나갔습니다. 애칭으로

부르는지 아니면 경멸조로 부르는지 모르지만, 경멸조로 불렀다 해도 내가 과민반응을 보일 수는 없었습니다. 그저 속으로

중국말 “똥무쇄 삐야나?”가 생각이 났습니다. 한국말로는 “똥이 무서워 피하나?”정도가 될 것입니다.

 

나는 종종 실실 잘 웃는데, 웃는 것이 사람들에게 실없는 사람으로 보여서 얕잡혀 보이기 쉬우니, 앞으로는 좀 젊쟎은 척

심각한 표정을 짓기로 했습니다. 그래야 사람들이 나를 함부로 대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 입니다.

 

작업장에서 오늘 한 일은 소시지 제품에 상표를 끼우는 일이었습니다. 비교적 쉬운 일이었으나 8시간을 꼬박 콘베이어 벨트

옆에서 서서 일해야 하는 지루한 일이었습니다. 주로 히스패닉 초기 이민자들이라 영어를 잘 못했고, 저는 스페인어를 못하니,

대화는 힘들지만, 몸으로 하는 일을 통해 서로 도와 가며 일하다 보니 동료애가 생깁니다. 서로 마주보며 싱긋이 웃거나,

어깨를 두드리거나 엄지 손가락을 세워 “잘 한다.”고 격려하며 일합니다.

 

오늘 내 앞에 서서 일하는 사람은 키가 크고 대머리가 진 60대의 백인남성이었습니다. 내가 “당신은 의사처럼 보인다.”고 하니,

“나는 사실 학위가 네개 있는 엔지니어인데, 직장을 잃고 여기에 나와서 일한지 6개월 된다”고 하더군요. 그러면서 물어 보지도

않았는데, “요즘은 미국의 공장들이 인도나 중국으로 가다 보니, 미국의 기술자들이 직장을 잃는다. 미국이 외국에게 다 팔렸다.”하며

다분히 의심스런 얘기를 하길래 그런가 하며 들어 주는 척 했습니다.

 

실제로 그 사람이 학위가 네개나 있는 엔지니어인지 아니면 자기를 부풀려 말하는 뻥인지 잘 모르지만, 젊쟎게 생긴 백인 중년

신사가 시간당 10불 버는 막 일을 하는 것을 보고 좀 놀랐습니다.

 

밤 10시가 넘으니 작업반장이 콘베이어 벨트의 전원 스위치를 끄며 작업을 중단하라고 하더군요. 그리고 우리를 모아 놓고

말하길, “우리가 일을 너무 빨리 하여, 금요일, 토요일 일감까지 다 끝내게 되었다. 미안하지만, 내일 모래에 이 작업장에서 더

할 일이 없다. 여러분이 열심히 일했지만, 일거리가 없으니, 내일 부터 여러분이 필요없게 될 지도 모르겠다. 공장에서 일이

생기면 연락하겠지만, 일이 없어서 집에서 쉬라고 하면 그런 줄 아시라.”는 광고였다.

 

옆에 있는 사람에게, “공장에 일감이 없어서 우리보고 그만 나오라 말이냐?”고 물어 보았더니, “그렇다. 더럽게 재수없다.”하고

말하더군요. 그래서 오늘은 일하라고 연락이 오면 일하러 갈 것이고, 일감이 없으니, 집에서 쉬라고 하면, “얼씨구나, 좋다.

일하러 갈려고 했는데, 일감이 없다고 쉬라고 하니, “엎어진데, 쉬어 간다.”고 오늘은 집에서 책을 보거나 쉴 생각”입니다.

 

공장에서 일하라고 하면 할 것이고, 또 다른 임시직을 구해 보기 위해 여기저기 수소문해 볼 자유도 있습니다.  이러다가

내년에 다시 교회 목회로 돌아 갈 가능성이 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