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금쯤 돌아가셨으리라 짐작했던 연세대 김형석 (철학) 명예교수가 현재 96세로 아직 건강이 좋으시다는 인터뷰
기사를 읽고 참 반가웠습니다. 대한민국 철학자 1세대로 불리워 지는 김형석교수님의 인터뷰 내용이 너무 참신하고
좋았습니다. 김교수께서는 “자유, 평등, 박애를 빼놓고 예수를 믿으라니, 누가 믿나? 목사님들은 교회 건물 크게 짓고,
교리만 강조하고, 교인들은 책을 읽지 않으니, 사람들은 교회를 떠나 무신론과 인문학과 휴머니즘으로 몰리고 있다.
한국도 교인들의 교육수준이 높아지고, 의식이 깨이면, 유럽처럼 교회가 텅텅 비는 현상이 생길 수 있다.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예수의 인생철학을 배우고, 예수의 가르침을 실천하는 것임을 깨달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참으로
지혜롭고 덕스러운 어르신의 말씀이라고 생각합니다.
오늘은 아내와 함께 모라비안 교회의 예배에 참석하고 왔습니다. 모라비안 교회는 체코의 옛 영토이름인 보헤미아와 모라비아에서
시작된 개신교회를 말한다고 합니다. 체코의 종교개혁의 선구자는 요한 후스였는데, 그는 체코의 프라하 대학의 철학교수요
대학교회 신부였다고 합니다. 그는 설교를 통해 로마 카톨릭 교회의 교권주의와 위계질서에 항거하다가 이단으로 몰려
사형선고를 받고 1416년에 화형을 당해 죽고 맙니다.
요한 후스는 죽었지만, 종교개혁 운동은 그를 따르던 사람들에 의해 계속됩니다. 그들의 공동체가 모라비안 교회, 혹은,
“형제들의 연합 (Unity of Brethren)” 교단으로 불리기 시작했습니다. 이 종교개혁운동이 마틴 루터의 종교개혁보다
60년 앞섰고, 영국 성공회가 시작되기100년전이었으니, 모라비안 교회가 개신교 종교개혁의 선구자로 볼 수 있겠습니다.
모라비안 교단의 초창기 지도자로 일컬어 지는 Gregory 대제는, “기독교인이 된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실천하는 데에 있는 것이지, 어떤 교리를 믿는 것이 아니다.”라고 했다고 합니다.
모라비안 교도들은 박해를 피해 보헤미아와 모라비아를 떠나 유럽과 아프리카 남미로 흩어 집니다. 모라비아 교회는 기독교
연합운동에 적극적이어서 세계기독교 교회 협의회 (World Council of Churches)의 초창기 멤버로 참여합니다.
모라비안 교도들은 전 세계에 약 백만명이상이 있다고 하며 대부분은 아프리카와 커리브 해안국에 있고, 미국에는
약 6만명의 교도가 있다고 합니다. 모라비안 교회가 가난한 나라에 복음으로 선교하는 것을 강조하다 보니, 모라비안
교회가 미국보다 가난한 나라에 더 많이 세워 졌다고 합니다.
대서양의 폭풍우 앞에서 노련한 뱃사람들 마저 겁에 질려 있을 때, 죽음을 두려워 않고 성난 풍파앞에서도 초연히
찬송을 부르던 모라비안 교도들을 보고 요한 웨슬레가 큰 감명을 받았다는 이야기는 잘 알려져 있습니다.
오늘 집에서 30분 떨어진 Green Bay에 있는 West Moravian Church에 갔더니, 여자 목사님이 담임
목사님이었습니다. 예배당 건물은 웅장한데 예배에 참석한 사람은 60명여명 정도였습니다.
예배당 구조와 예배순서, 그리고 설교내용등은 개신교회의 전형적인 예배라고 느껴 졌습니다. 전자 오르간으로
반주를 하던 할머니와 피아노로 반주를 하는 남자의 피아노 소리에 파묻혀 사람들의 목소리는 별로 들리지 않는
점에서 무반주로 사람들의 노래소리가 낭랑하게 들리던 메노나이트 교회와 차이가 났습니다.
성가대 특송시간에는 교인들이 일곱명 나와서 특송을 하는데, 담임 목사님도 강단에서 내려와 성가대에 합류하여
함께 특송을 부르는 것이 보기 좋았습니다. 오르간 반주를 하던 할머니도 성가대의 앞줄에 서서 특송을 함께
부르는데, 다른 성가대원들은 모두 악보를 보며 성가를 부르는데, 이 할머니는 눈을 지긋이 감고 노래를 부르는
것 같았습니다.
저는 속으로 “다른 성가대원들은 악보를 보며 특송을 부르는데, 왜 저 할매는 눈을 지긋이 감고 경건한 체하며
노래를 부를까? 그러다가 틀리면 어떡할라고?”하는 잡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예배를 마치고
사람들이 나오는 것을 보는데, 검은 색 보호견이 반주자 할머니를 안내하고 나왔습니다.
저는 그 할머니에게, “아이고, 앞이 안 보이시는 분이십니까?”하고 물으니, 웃으시면서, “그렇소. 맹인입니다.
”하더군요. 저는 “눈이 멀쩡한 저는 피아노에서 도레미가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는데, 눈이 보이시지도 않는데,
오르간을 무척 잘 치십니다. 오르간을 얼마나 치셨는지요?”하고 물었더니, 할머니는 , “60년 정도 쳤습니다.”하시더군요.
예배중에 목사님이, “기도요청하실 분, 기쁨과 슬픔을 나누실 분 말씀하세요.”라고 했더니, 어떤 할머니가, “내 막내
남동생 생일을 축하하고 싶습니다. 내 막내 동생은 이제 85세 입니다. 이제 나이가 많아 건강이 안 좋습니다. 막내
동생의 아내도 동생보다 나이가 좀 많아 둘 다 염려가 됩니다.”하니, 목사님이, “아, 그 막내 남동생 말이군요.
아내는 103살이라고 했던가요?”하고 물었더니, 그 할머니가 “그렇다”고 하자, 사람들이 “아!”하고 감탄을 했습니다.
예배가 끝난 후, 그 할머니에게, “남동생은 85세, 그의 아내는 103살이라는 말 정말이냐? 결혼한지 오래 되었느냐?”
하고 물어 보았더니, 그 할머니는 “오래 됐다. 한 56년 되었을 거다.”고 하더군요. 그 말을 옆에서 듣고 있던 60대
후반의 아저씨가, “우리 이모는 86살 때 처음으로 결혼을 했다”고 하더군요. 제가, “신랑은 몇살이었는지요?
그리고 결혼생활은 얼마나 오래 지속 되었는지요?”하고 물어 보았더니, “신랑은 70대의 상처한 홀아비였소.
우리 이모는 결혼하고 나서도 6,7년 사시다가 세상을 떠났어요. 나는 이모가 결혼하는 것이 좋았는데, 우리
어머니는86세된 언니가 결혼하는 것에 대해 질색을 하고 싫어하더군요.”하며 웃더군요.
친교실에 들어가 보니, “감옥독방 체험실”이라는 독특한 가건물이 지어져 있었습니다 . 겉면에는 “죄수들의 인권을
짓밟는 고문행위를 중단하라”는 구호가 적혀 있더군요. 취지는 죄수를 독방에 장기수감하는 것은 죄수들의 교화에
도움이 안되며, 비인간적인 고문행위 이니, 이의 중단을 촉구하는데, 교인들의 동참을 바란다는 것이랍니다.
교도소 선교에 참여하고 있던 70대 노신사는 무기수가 만들었다는 공예작품을 보여 주었습니다. 종이판자를 잘라서
아교풀을 붙여서 형태를 만들고 물감을 입혀서 만들었다는 공예작품은 놀랄만큼 정교하고 예술적이었습니다. 그
노신사는 이 작품을 만든 사람은 16세에 무기수로 감옥에 갇힌 사람으로 한번도 미술공부를 해 본 적이 없는 사람인데,
이 같이 정교한 공예품을 만든 것이 놀랍다고 했습니다.
저는 호기심에서 무슨 죄를 저질렀길래 16살의 소년이 무기수로 감옥에 갇혀 지내고 있느냐고 몰어 보았습니다. 그 노신사는,
“그 무기수는 지금은 54세가 된 죄수로, 아마도 감옥에서 못 나오고 죽을 것 같다. 그 소년은 일찍이 부모를 잃고 위탁가정을
여덟군데나 옮겨 다니며 불운한 유년생활을 보내다가 집에 같이 살던 개와 친하게 지냈다. 살면서 정을 주고 받은 대상은 그
개밖에 없었다. 그런데, 하루는 학교에 갔다와 보니, 개가 죽어 있었고, 이웃집 사람들이 그 개를 죽였다는 사실을 알고 난 후,
그 소년은 엽총을 갖고 가서 개를 죽인 사람, 세 사람을 죽였다가 무기징역을 받은 사람이다. 지금은 진정한 크리스챤이 되어 있다.
그 사람이 나에게 감사의 표시로 자기가 만든 공예품을 준 것인데, 오늘 교회 친교실에 전시하게 된 것이다.”라고 하더군요.
용은 동양에서는 주로 행운을 갖다주는 상상의 동물로, 서양에서는 적 그리스도와 같은 악한 세력을 상징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고 합니다. 그 용에 맞서서 용감히 싸우는 의로운 전사를 묘사하는 그 공예작품을 보고, 뛰어난 창작능력이 있는 사람이
한 순간의 화를 참지 못해 세 사람을 죽이는 바람에 평생을 감옥에서 살아야 하는, 나와 동갑내기인 미국사람의 기구한 인생이야기를 듣게 되었습니다.
성경에 “화가 나더라도 죄는 짓지 말라”는 말씀이 있더군요. 화가 나더라도, 사람은 죽이지 맙시다. 아멘!
오래전에 그렸던 ‘활련화와 코스모스’ 사인 했습니다.
유화 20″ x 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