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10.04 20:22:15 (*.69.35.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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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저희 집에 손님이 한분 와 계십니다. 일본 지바현의 중학교에서 영어를 가르치는 일본인 코마쭈
여선생님이 저의 집에서 몇일 지내게 되었습니다. 저의 아내가 근무하는 중학교와 일본 지바현의 중학교가
자매결연관계가 맺어져 일본학생들과 인솔교사 두어 사람이 이곳 중학교를 일주일간 방문하고, 이곳의 미국인
학생들과 인솔교사가 일본의 자매학교를 방문하는 프로그램이 있습니다.
프로그램 담당자가 올해는 인솔교사의 한 사람인 코마쭈 여선생을 저희 집에서 모셔달라고 부탁을 해와서 코마추
선생을 저희 집에 모시게 된 것입니다. 중학교 영어교사인 저의 아내도 일본인 손님이 중학교 영어교사라는
말을 듣고 “말이 통해서 좋겠다”고 하며 흔쾌히 수락했습니다.
오늘 아침에 코마쭈 선생과 인사를 나누게 되었습니다. 저는 일본여자는 다 키가 아담한 줄 알았는데, 이 여선생님은
키가 훌쩍 커서 제가, “일본인 치고 키가 참 크시네요.”라고 말할 뻔 했습니다. 동양여성들 중에는 자신의 키가 너무
큰 것을 부끄럽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으니, 초면에 남의 신체의 특징을 덜먹이며 인사를 하는, 무례하고 어리석은 실수를 할 뻔 했습니다.
일본인 여선생님은 호스트 패밀리인 저희 집에 정성스런 선물을 가져 오셨더군요. 아내에게는 머리를 묶는 장식핀과
손가방 그리고 저에게는 일본 사케 (정종)을 한 병 선물로 가져 오셨더군요. 그리고 시아버님이 직접 만드신 것이라며
오리가미 종이학도 한마리 주었습니다. 저의 아내도 위스칸신 기념품인 장식용 테이블 보를 일본인 여선생에게 선물했습니다.
저는 일본인 선생이 우리 집에 온다기에, 우리 집 벽에다가 “대한 독립 만세”나 일본인들이 중국인들을 30만명을 죽인
남경대학살의 사진들을 벽에다 도배를 해 놓을까 하다가, 집에서 쫓겨날까봐, 젊쟎게 처신하기로 했습니다.
제가 아는 하나 밖에 없는 일본어 문장, “와다구시와 목시 데스” (나는 목사입니다.)를 한번 써 먹은 후, 일본인 선생님의
마음을 편하게 해 주고자, “나 일제(중고)차 타고 다닙니다.” 하니 일본 여선생은 저를 반일감정이 별로 없는 사람으로 간주하고 안심하는 듯 했습니다.
저는 동양의 깡패국가였던 일본에 악감정이 있는 한국사람이고, 손님은 원자폭탄세례를 받고 패전하는 바람에 미국에 열등감이
있는 일본사람이고, 아내는 침략국 일본을 응징한 승전국 미국 사람인데 이 세 사람이 아침을 같이 먹으며 민간외교의 다리를 놓는 듯 했습니다.
오늘은 토요일이지만, 공장에 할 일이 많아 일하러 가게 되었습니다. 보통 2시간 일하고난 후 약 15분의 휴식시간이 있습니다.
이때 모두 집에서 가져간 음식을 꺼내어 먹습니다. 그런데, 남들은 음식을 꺼내어 먹을 때 아무 것도 먹지 않는 여자가 한 사람
있습니다. 공장일은 육체 노동이라 속이 비면 힘이 빠지기 쉽기 때문에, 부지런히 먹어야 힘을 쓸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백인 아주머니는 휴식 시간에 아무 것도 먹지 않고 풀 죽은 듯 시무룩하게 있습니다. 그래서 한번은 제가, “집에서
도시락을 가지고 오지 않았나? 먹을 게 없냐?”하고 물었더니, “집에서 많이 먹고 와서 괞챦다”고 하더군요. 그런데, 옆에서 먹을 것을 주면 곧 잘 받아 먹더군요.
그래서 오늘도 쉬는 시간에 우두커니 앉아 있아 있는 것을 보고 제가 집에서 가져온 복숭아를 한 개 주면서 “먹겠느냐?”고 물었더니, 받아 먹더군요.
그래서 제가 “어디에서 사느냐?”고 물어 보았더니, 집없는 사람들의 임시거처인 Freedom House 에서 13인 막내 아들과 같이 사는데,
이 아들이 말썽을 많이 피워 골치라고 하더군요. 홈레스 피플들이 사는 임시거처에 사는 관계로 제대로 먹을 것을 살 형편이
못되는가 봅니다. 저는 집에서 가져간 찐계란, 요거트등을 먹겠느냐고 물어 보았더니, 자존심 때문인지, “괞챦다”고 하더군요.
이 아주머니가 백인 남자에게서 아이둘, 히스패닉 남자에게서 아이둘, 흑인 남자에게서 아들 하나를 낳은 그 여자입니다. 지금은
막내 아들이랑 단 둘이 홈레스 쉘터에서 산다는데 앞으로 헤쳐가야 할 인생길이 쉽지 않아 보입니다.
어제도 공장에서 콘베이어 벨트 앞에 서서 일을 하는데 제 옆에 있던 Roger라는 백인에게 이번주에 몇일 일했느냐고 물어 보았더니
하루밖에 일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공장에서 불러 주지 않아서 하루밖에 일하지 못했다는 겁니다. 저는 이번주 5일 동안 일을 했는데,
Roger는 하루밖에 일하지 못해 적은 수입이 더 줄어 들 것입니다.
Roger는 알콜중독이 있는 것이 금새 눈에 들어 옵니다. 얼굴이 술독에 올라 항상 벌거스럼하고 코는 딸기코인데, 평생 술을 달고
산 사람처럼 보입니다. 제가 “가족이 있느냐?”하고 물어 보았더니, “이혼했다. 여자는 골치덩이라 이제 더 이상 여자없이 살겠다”고 하더군요.
제가 나이가 어떻게 되길래 그런 소리를 하느냐하고 물었더니, 만으로 53세라고 하더군요. 저는 “나보다 한살 적은 젊은 사람이네”라고
했더니, 생일이 언제인지 묻길래 61년생 6월생이라 하니 자기는 61년 11월생이라고 하더군요. 한국식으로는 같은 소띠 동갑이고 몇달 제가 더 빨리 태어난 것입니다.
Roger는 가족이 없이 자기 차안에서 먹고 자고 생활하며 일하러 온다고 했습니다. 주방기기가 없어서, 맥도날드와 같은 음식점에서
식사를 해결하니 돈이 더 많이 든다고 합니다. 저는 호기심에서, “주정부에 실업급여수당을 신청해 본 적이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Roger는 “그것도 보통 까다로운 것이 아니다. 매주 네곳의 임시직 사무실에 취업신청을 하여 일할 용의가 있다는 증명을 해야 하며,
실업수당이 나와도 자녀양육비를 제하고 나면 일주일에 $30 밖에 안 되더라.”고 했습니다. 저는 Roger가 불쌍하여 제 지갑에 있는
유일한 현찰인 10불을 손에 쥐어 주며, “이걸로 식사한끼라도 해라”하고 주니 좋아하며 받더군요. 앞으로 성탄절이 다가오면 좀 더
주어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곧 이어 작업반장이 와서 오늘은 일감이 많아서 잔업을 밤 12시 30분까지 해야 하는데, 저보고 하겠느냐고 물었습니다. 보통때는
한시간당 10불을 받지만, 잔업은 시간당 15불을 주기 때문에 저는 “하겠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아내에게 전화를 하여, “오늘 잔업을
두시간 더 하고 집에는 새벽 1시반쯤 도착하니 염려하지 마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Roger는 자기는 잔업을 하지 않고 퇴근하겠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제게 와서 하는 말이, “I gotta go drink beer.” (나 술먹어야 해)라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술, 그거
꼭 마셔야 하나? 안 마시면 어떻게 되는데”하고 물었더니, “나는 술을 마시지 않으면 손이 떨리고 잠을 못자. 술을 마셔야 편안해 져서 잠이 와”하는 것이었습니다.
나랑 동갑인 Roger는 같은 해에, 부유한 미국에서 태어 났고, 나는 가난한 한국에서 태어 났는데, 나는 지금 집도 있고 아내도 있고
편하게 사는데, Roger는 가족도 없이 차에서 먹고 자는, 불쌍한 신세가 된 것은 알콜중독때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제가 Roger 에게, “너 매일 술 먹냐? 한번에 맥주를 몇개 마시냐? 나도 맥주를 두어달에 한캔씩 마시는데, 맛을 몰라서 그런지 맥주
캔 하나 마시기도 힘들더라.”하고 말하니, Roger는 “술마시는 것도 자꾸 연습하면 는다.”하며 힘없이 웃더군요.
내가 한 시간 노동을 해야 버는 10불을 Roger가 불쌍하여 밥 사먹으러고 주었더니, Roger는 술을 사 먹을 모양입니다. 본전 생각에
아까운 생각이 들었지만, 저는 어릴 때 교회에서, “술 취하지 말라.”하는 성경의 가르침을 배우며 자랐기 때문에, 알콜중독에 빠지지
않고 건강하게 살고 있음에 감사를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