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이 몇 년 전 남편과 사별하고 혼자 살고 있는 인생의 선배에게 전화를 드렸다.
나보다 십 여년이나 연상인 그 분이 이제는 몸이 말을 안 들어 사는 것이 정말 힘들다고 한다.
어려서는 아버지와 오빠가 무서워 꼼짝 못하고 살았고
결혼 해서는 무뚝뚝한 남편만나 좋은 세월 만들지 못했단다.
아들 둘 있지만 잘 사는 놈도 도움이 못되고 그나마 못 사는 놈은 골치 덩어리란다.
젊었을 때 신문을 보면서 혼자사는 노인들… 운운하는 얘기가 자기 얘기가
아닌줄 알았는데 병들고 남편죽고 자식들이 하나도 도움이 안되는 그 할머니
얘기가 바로 자신이란다. 인물도 출중하고 교양을 겸비한 참 좋은 분인데
대화속에 슬픔과 비애 고독이 절절이 묻어있다.
불행한 세월에 살아온 자신이 가엽고 또 바보 스럽고 후회 스럽다고 한다.
“다시 한번 세상을 더 산다면 나는 정말 나쁜 여자 소리를 들으면서 살꺼예요.” 한다.
좋은 여자가 되기위해 살아온 세월이 너무 아깝단다. 왜 남들로부터 좋은 소리를 듣기위해
내가 참아야하며 불이익을 당했는지 모르겠단다. 여자를 가두어놓고 큰 소리 못치게
만든 사회의 산물일 것이다. 우리때는 여자는 말도 조용조용히 해야 했다.
집안 어른이나 선생님에게 말대꾸? 어림도 없는 소리다.
흠 흠 흠
친한 분으로부터 내가 좀 까타롭고까칠하다는 소리를 들었다. 내가?
속으로 나에게 물었다. 정말 내가 까타롭고 까칠한 사람인가? 듣고보니 그리 기분 나쁘지 않았다.
나 역시 지나온 세월 착한 여자이기위해 많이 노력했던 것 같다. 옛날 남편에게 부당한 일에 할 말도
못하고 참으면서 울기만 했었다. 아, 내가 그때 까칠 했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아이들 상처
입을까봐 밤 중에 이불 속에서 소리죽여 울면서 싸우지 말았어야 했다.
길길이 뛰면서 무식하게 전쟁을 치루었다면 내 속에 뭉글뭉글 피어나는 화 병은 일지
않았을 것이고 ‘간이부어 더 이상은 살아 갈 수 없음.’ 이라는 진단은 받지 않았을 터.
사람들로부터 성질 고약하다는 사람치고 못 사는 사람없다.
좀 까칠하면 어때? 왜 착하기만 해야돼?
착한 사람 / 참는 사람 일찍 세상 떠난다. 내가 병들고 죽으면 나만 손해인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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