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sland's Story

아일랜드 이야기 1013 – 나는 머슴입니다

2014.07.03 23:43:57 (*.69.35.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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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 아홉시가 넘어 아는 분 댁을 방문했다.

몇 번 방문 기회를 노렸지만 서로가 바쁜탓에 이루지 못했었다.

내 분주함을 두고 사람들은 너무 많은 일을 한다고 놀래기도 하고

걱정하기도 하는데 후자가 더 많다. 물론 내 건강을 염려해서 하는

말 들이다. 오늘 이 댁 야채 밭을 보나 나는 완전 아가야 수준이다.

주인 마님이 심어놓은 온갖 야채들이 너울너울 푸르른 잎을

자랑하고 있다. 여러군데로 나누어져 있는 밭 들안에는 눈에익은

인터네셔널 야채 군상들이 서로 머리를 맞대고 커가고 있다.

*어느 놈 들은 자리가 비좁다고 아우성 치고있다.

*그늘 쪽에 심기워진 놈들은 비실비실 누리띵띵하다

*그런가 하면 커다란 화분에 하나씩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놈들(호박)은

의기양양 / 도도함을 나타내며 “나요, 나. 나 잘난 것 좀 보소.”하며 예쁜

호박들을 내 보인다.

*그집에서 양자해온 우리집 돗나물은 땅을기면서 퍼지고 있는데

이 댁의 돗나물은 푸른 숲을 이루면서 하늘을 향하고있다.

*줄지어 올라가고 있는 콩나무?들은 마치 사열하는 국군병사들 같다

*마당지킴이 무화과 나무는 한 1백년 쯤 된듯 하다.

*무궁화 나무 – 세상에 나는 이 처럼 큰 무궁화 나무는 생전에 처음이다.

수 백명의 무희가 춤추듯 붉은 꽃잎들이 석양에 안겨 더욱 눈부시다

*고추나무들 – 마님은 고추를 아주 좋아 하나보다. 여기도 고추 저기도 고추

고추들이 반짝인다. 여자들 모두는 이집 마님처럼 고추를 좋아하긴 한다.

*몇 그루 뽑아주는 당근나무 – 당근은 오렌지 색만 있는 줄 알았는데

마치 무지개를 올려놓은 듯 다양한 색깔이다. 세상에 당근이 여러가지 색깔이

있는 줄 몰랐다. 평생 새로운 것 배우다 가는가보다.

늦은 시각이지만 집안으로 들어가 염치없이 차도 얻어먹고 아이스 크림도

대접받았다. 마님께서 작은 통을 가져오더니 그 안에 들어있는 각종 야채

씨앗들을 골고루 선물로 주신다. 그뿐 아니라 도라지 / 더덕 / 호박 / 참나물 /

기억이 나지 않지만 몇 가지 더 자라고 있는 야채들을 뽑아주신다.

아내가 “여보 여기 좀 파줘요.” 하면 큰 삽을 들고 달려가 아내가 원하는 지점에

땅을 파주고 거름을 듬뿍 얹어주는 남편 ! 물주고 풀 뽑고 기타 모든것을 아내와

함께 아니 어쩌면 더 많이 도와주는 남편! 그 남편 되시는 분이 내게 말한다.

“나는 이집의 머슴입니다.” 

그집 머슴의 얼굴이 오늘 밤 휘엉청 떠 있는 달 처럼 환하다.

충직한 머슴을 거느린 마님의 얼굴에 ‘복’자가 써 있다.

내게도 머슴이 필요하긴 한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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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당에서 야채들을 구경하는 그 시각에 하늘에는 이 처럼

고운 노을이 춤추고 있었습니다.

July 3 Sunset.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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