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회 아일랜드 나잇’이 곧 다가온다.
올해는 무대위에 서는 사람과 청중을 합해
거의 80명을 육박하고 있어 더 이상 못 받게되어 마감을 했다.
예능을 가르치거나 배울 때는 사람들에게 선 보이면서 자신도 즐겁고
보는이에게도 많은 기쁨을 주기 위함이 아닐까 한다. 그러나 막상
무대위에 올려주려고 하니 단번에 “할께요” 하는 사람이 적다.
캐내디언들은 감사하다면서 성큼 등록을 하는데 한국 사람들은 뜸을 들인다.
어제 근사한 무대가 설치된 결혼 피로연의 밤이 시작됐다.
빵빠라빠라빠라가 울려 퍼진다. 준비가 덜 되었는지 사회자가 기계를
만지면서 시간이 지체되니 맥이 끊기는 듯하다.
뒤에서 누가 “엘리샤가 나가야 한다”고 고함을 지른다. 애궁 부끄럽게 시리.
가만가만 얘기하면 좋을텐데 나는 손 사레를 치지만 마이크에서 때 맞춰
내 이름이 불리워진다. 240 여명이 모인 이 자리에서 더 이상 시골소녀처럼
뺄 수는 없는 법. 마침 자리도 맨 앞 자리다.
운명이 다가오면 그 운명과 맞서야 한다는 것이 내 철학이다.
“노래 그까짓것 한번 크게 불러보지 뭐” 고개를 바로들고 걸음은 사뿐히
걸어나가는 엘리샤. “남행열차”를 틀여줘요.
“여러분 다 나와서 춤을 춰요. 오늘같이 기쁜날 축하객들이 신나게
놀아야 신부신랑도 기쁘답니다.” 한마디 하는데
벌써 전주곡이 흐른다. 중간중간에 추임새를 넣는 것은 기본이고
내 양의 200배쯤 늘려 폼을 잡고 부른다.
헤어지면서 어느 사람이 나를 특별히 어느 장소에서 부르겠단다.
샌드위치만 잘 만드는 줄 알았는데 이렇게 노래를 잘 부르는 줄 몰랐다고 하면서.
“애구 무서워라.” 내 목소리는 진짜루 보통이다. 노래를 부를때 약간의 액센트
그리고 감정 몰입. 후르르 ~~ 떨면서 흔드는 몸매 이런 것들을 보면서
내 별로인 목소리는 잘 들리지 않게 만드는 것이 내 노하우다.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저녁에 전화 한통이 들어온다. 문학회 들어가고 싶은데요.
나를 자주 보려면 천상 문학회에 들어와서 청강생이라도 되어야 겠단다.
“오 !” “엄마 말이 맞았어.”
“어디 가서 노래를 부를 일 있으면 제일 첫 번에 나가서 불러라
나중에 나가면 사람들이 기억을 못한단다.”
“왜 수줍어 하십니까?
걍 나가서 부르세요. 한번 두번 빼다보면 자기 차례 못 찾아 먹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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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당에 가련하게 피어있는 데이지예요.
자전거 친구들 조금 손질 했습니다.
새우 등장입니다. 여름이면 몇 번씩 새우가러 갑니다.
일년 먹을 새우젓을 담궜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