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아암~~~ horse !!”
딸아이가 내 야코를 죽이려면 가끔씩 이렇게 소리를 질러본다.
이 소리가 나면 무조건 두 손을 번쩍들고 “쏘리쏘리쏘리”를 연발한다.
그리고는 둘이 쳐다보며 “푸하하핫~” 크게 소리내어 웃는다.
사연은 이렇다.
딸아이에게는 말괄량이 기질이 많이 있다.
*처녀시절 번지점프도 했고
*모토사이클도 탔다.
*학교에서 농구 / 배구 / 테니스 선수로 활동했으며 어렸을때는 기계체조도 했다.
그런가하면 12학년 여름 방학때 가까운곳에 캠핑간다고 하면서 단짝 친구와둘이
캘리포니아로 달려가 산타모니카 비치가에서 일주일동안 선텐을하고 돌아왔다.
가까이 이모집이 있지만 몰래 왔기 때문에 들르지 못하고 먹는 것 샤워등
생고생을 했다고 몇 년 후 실토해서 나를 아연실색하게 만들었다.
초등학교 때였는데 말을 사달라고 조른다. 당시 밴쿠버는 조금 외곽으로
나가면 말들이 많이 있었는데 딸아이는 말을타고 한 없이 달리고 싶은
야생마 같았다. 나는 당장은 못 사주겠지만 네가 12살이면 사주겠다고
약속했다. 딸아이가 12살이 되는 것이 까마득히 먼 세월인줄 알았다.
당시 사업이 잘 되던때였고 말을사서 사육장에 맡겨놓고 딸아이가
말을 타고 싶을때가서 타게 해 주려는 내 심산이었다. 몇 년 세월이 흐르고
딸아이는 12살이 됐다. 나중에 들은 얘기인데 말 얘기를 친구들에게 다 해놓아서
친구들도 딸아이가 말을 타게 될 것으로 알고 있었단다.
말을 사서 사육하는것은 생각보다 경비가 엄청나게 많이 들었다.
나는 딸과의 약속을 지키지 못했고 그것은 평생 내 코를 납작하게 만드는
빌미가 됐다. 내가 고개를 팍 숙이면서 용서를 빈지도 삼십여년이 지났건만
오늘도 전화해서 “Mom Horse!”라며 나를 깜작 놀라게 만든다.
인터넷에서 따온 자식과의 약속을 지킨 훌륭한 분들의 글을 소개한다.
중국 춘추시대의 유학자인 증자(曾子)의 집에서 생긴 일이다. 어린 아들이 장에 가는
엄마를 따라가겠다며 떼를 썼다. 엄마가 “얌전히 기다리면 다녀와서 돼지를 잡아 요리해
주겠다”는 말로 달래놓고 장에 갔다 오니 증자가 소중한 돼지를 잡고 있었다. 깜짝 놀란 아내는
“그냥 해본 말인데 진짜 잡으면 어떻게 하느냐”고 따졌다. 그러자 남편은 “자식에게 속임수를
가르쳐선 안 된다”며 손을 저었다.
▷고전에 나오는 ‘증자의 돼지’는 말의 책임, 약속의 중요함을 일깨우는 고사(古事)다.
증자보다 훨씬 통 큰 인물이 조선시대 중기에 살았다. 왕족이자 문신인 이경검은 자식에게
한 말을 지키기 위해 25칸 집 한 채를 아홉 살짜리 딸에게 물려주겠다는 내용을 담은 상속문서를
작성했다. 훗날 자식들 사이에 재산 다툼이 생길까봐 문서에 ‘다른 자식들은 불평하지 말라’는
조항과 맏아들의 서명까지 챙겨 두었다.
나도 어떻게 해서라도 딸에게 말을 사 주었어야 했다는 것을 오늘 이글을
읽으면서 느끼게 된다. 그렇게 했더라면 함부로 자식에게 약속했다가 평생 머리를
조아려야하는 운명을 격지 않아도 됐을껄. 지금도 딸아이의 사진을 다시 쳐다보니
‘Horse”라고 소리지를 것 같은 불안감이 스며든다. 겁나서 얼른 잠 자리로 들어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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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말을 못 사주었어도 그림위에라도 딸아이를 말 위에 얹어주고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