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 두시가 조금 넘는데 전화가 들어온다.
“ㅎㅎㅎ 피 검사 결과가 나왔는데 다 normal이다.
두어군데 좀 부실하긴 하지만 크게 신경쓸 곳은 아니고.”
언니의 흥분된 목소리다.
세상에, 요즈음 언니 때문에 얼마나 노심초사 걱정을 하고
살았는지 모른다. 9월에 나와 함께 몬트리올 여행을 다녀온후
온 몸이 아파오기 시작했다. 병원으로 한방으로 물리치료로
약으로 정신없이 병의 원인 찾기를 시도한 언니.
어제 밤에도 거의 죽어가는 목소리로 아무래도 수상하다는
소리만 연속했다. 평소에 건강하던 사람이 하루 아침에
저렇게 될 수가 있을까 싶을 정도였다. 너무나 신경이 쓰여 나는
하루에도 몇 번씩 전화로 확인하며 건강상태를 보고 받곤 했다.
우리 칠 남매중 이제 세 자매만 남았다. 맨 큰 언니와 막내인 나 그리고
지금 엘에이 언니다. 큰 언니는 한국에 살고있으니 자주 만나기
어렵지만 엘에이 언니와는 각별한 사이다. 언니가 세상을
떠나면 어쩌나하는 불안감이 밀려오면서 일도 손에 안 잡히고
안절부절이었다.
오늘 밤 인터넷으로 피검사 결과를 확인한 언니는 금방 목소리부터
달라지고 있다. 병은 벌써 다 물러갔다. 사람 마음이란게 그런가보다.
죽는다 죽는다고 생각하면 정신이 벌써 육체를 죽인다.
올때마다 캐나다 산 좋은 바이타민을 선물로 드렸건만
내 팽개치고 안 먹었다면서 회개 / 용서를 비는 언니.
이제 부터는 꼬박꼬박 약 / 바이타민 잘 먹겠다고 약속하는 언니.
너 처럼 그렇게 철저하게 약 잘 챙겨 먹는 사람은 많지 않다고
슬쩍 자신의 게으름을 감추려는 언니.
핏줄이 무엇인지.
그 끈끈한 끈이 내 마음을 한 동안 동여매고 있었다.
오늘 밤 끈을 조금 느슨히 하고 잠 잘 수 있겠다.
감사 기도 저절로 나온다.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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