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 설거지를 하는데 전화 한통이 들어온다.
전화 하신분은 밴쿠버에 살고있고 가끔씩 전화 하거나 만나는 사이다.
“선생님 저 붓을 들었습니다.”
“Wow.. 축하축하드립니다.”
“그런데 우리 그림가르쳐 주시는 선생님과함께 빅토리아 방문하고 싶습니다.
우리 선생님께서 엘리샤 선생님의 기를 좀 받고 싶다고 하네요.”
“오, 주여. 나는 기를 뺏기면 안되는데. 아무튼 와서 서로 주고 받기로 합시다.
흐 흐 흐.”
두어시간에 걸쳐 긴 통화를 끝내고 밤 열시경에 화실로 올라왔다.
전화 거신분은 지금 경제적으로 너무나 가정적으로 나무랄데 없이
행복하게 잘 살고 있는 분이다. 단 한가지 이민와서 새로운것에 도전하는데
자신이 없어 늘 뒤쳐지는 생각때문에 정신적으로 불안해왔다고한다.
내 글을 보면서 으쌰으쌰 나도 이렇게 살아야 겠다는 다짐을 했고
자신도 화가의 길로 가려는 굳은 결심을 했단다. 그분의 시작은 내 오십살의
시작보다 훨씬 전이기 때문에 무한 가능성이 있다.
“저 있잖아요. 한국에서 전공이 뭐냐? 등등 학벌얘기가 나오면 기가 죽곤 했어요.
이제 나도 독한 마음으로 이곳에서 열심히 공부해서 기 팍팍 살리면서 살고 싶어요.”
“하모하모요. 뜻대로 될 것입니다.”
나도 한국적인 학벌을 별로 내 세울것이 없는 사람이다.
유명한 중고등 대학을 나오지 못했다. 십 사년전 미국으로 내려가 취직한 곳이
큰 교회 행정실이었다. 출근하여 얼마 안된 날 이었는데 낮에 여자들이
무슨 모임이 있어 파킹장으로 줄줄이 들어온다. 타고온 차들이 일류 고급차들이다.
학벌 또한 한국에서 알아주는 유명대학 출신들이 많은 교회였다.
그때 내 처지를 한탄하며 우울해야 했을텐데 나는 기가 죽지않고
그들과 아주 친하게 지내면서 행정실 일을 잘 처리해 나갔다. 마음이 든든하면
세상 어떤 것들이 들이닥쳐도 기죽을 일이 아니다. 내가 저들보다 못하다는
생각을 해 본적이 없기 때문이다.
오늘 전화하신 분에게 나는 이렇게 말해주었다.
당신 건강하지요? 한참전에 유행하던 얘기를 기억하세요.
*학벌좋은 년은 예쁜년을 못 이기고
*예쁜 년은 돈 많은 년을 못 이기고
*예쁜년은 건강한 년을 못 이긴다.
“그러니 당신이 그 세 년을 이미 이겼습니다.
열심히 공부하셔서 훌륭한 작가가 되세요. 늦게 시작하여 성공한 화가들은
얼마든지 많습니다. 우리 함께 유럽 전시 다닙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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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께 함 가지고 오신분이 주신 튜립이 이렇게 활찍 웃고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