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잘못을 인정하며 시인하기란 여간 어렵지 않다.
누가 자기에게 당신은 이런이런 잘못된 습관이 있소라고 말 한다면
눈에 쌍심지를 돋우면서 그 말한 사람에게 달려들 것이다.
그러기 때문에 여간해서 이런 얘기는 못한다. 아니 안 한다.
잘못을 시인하는 것도 습관을 들이면 할 만하다.
사실 누군가가 나의 잘 못을 얘기 할때 가만히 생각해보면
틀린말이 아니다. 단 내 자존심 문제가 걸려있기 때문에
아니요아니요라며 자꾸 해명하러 든다.
나에게도 그런 비겁한 행동이 없지 않았다. 함께 살던 애들아빠가
내 잘못한 점을 걸고 들어오면 화가나서 펄펄뛰었다. 부부지간에
무슨 자존심 대결을 해야 했는지 지금 생각해보면 우습다.
물론 그때는 팔팔한 30 40대의 얘기긴 하다.
요즈음은 누가 당신은 당신만 옳다고 생각하느냐?고 말하면
“아, 아뇨 그게 아닐꺼예요. 아마도 내가 잘 못 생각한 일일 꺼예요.”
라며 꼬리를 팍 내리고 만다. 말하려던 사람의 스르르 어깨
무너지는 소리가 귀가 아닌 눈으로 들려온다.
친한 사이에도 그렇다. 사실 오래 사귀다 보면 이런 저런 흉이 다 잡히게
되어있다. 가까운 사람이 당신 이런것 좀 고쳐주면 어떨까요? 할때
지체말고 “Okay”를 할 수만 있다면 정말 Koooooool한 관계가 지속 되지
않을까.
“변명말고 인정하자 잘못된 나의 습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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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에 밭에서 딴 사과들인데 시간 날때마다 조금씩 수정하고
있습니다. 오늘 폴 세잔느의 사과 그림들을 다시 감상 했습니다.
정말 아름다운 작품 들입니다. 정물화를 완성하기 위해 100회의
작업을 했다는데 겨우 4번 째이니 아직도 희망이 있네요. ^^
이 세상에는 세 개의 사과가 있는데 그 하나는 이브의 사과
둘째는 뉴턴의 사과 셋째는 폴 세잔느의 사과라고 합니다.
오늘 세잔에대해 읽은 것을 독자들과 나누고 싶어서 카피 올립니다.
세잔은 평생 고독하게 그림에 몰입했습니다. 어머니가 별세한 날 오후에도 작업을 했고,
병역 기피로 수배령이 내려졌을 때에도 남부 프랑스 에스타크에서 그림에 몰두했습니다.
하나의 정물화를 완성하기 위해 100회를 작업했고 초상화를 그릴 때에는 모델의 자세를
150번이나 고쳤습니다. 이 까다로운 요구 때문에 유독 아내 오르탕스의 초상화가 많다고 합니다.
세잔은 현대미술의 막을 연 사람으로 평가받습니다. 그는 전통적인 회화법에 반기를
들고 화가의 인상에 따라 사물을 표현하고자 한 인상파에 속하지만, 순간적인 인상보다는
사물의 구조에 주목했습니다. 사물을 여러 방향에서 관찰하고 하나의 화폭에 담아 그의
그림은 마치 몇 사람이 각기 다른 방향에서 둘러앉아 그린 듯합니다. 세잔의 그림은
입체파(Cubism)의 등장을 불렀고, 세잔이 없었으면 피카소도 없다는 말은 이래서 나온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