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면서 아주 힘들때 카운셀러를 만나러 간 적이 있다.
요즈음이야 카운셀러 운운하지만 우리 나이즈음 사람들은 이런곳에 가는것 그리 쉽지않다.
인생의 풀지 못할 고민 거리는 초청하지 않아도 때를 가리지 않고 날라든다.
이때 소심한 사람은 혼자서 끙끙거리고 울다 지친다. 그러다 우울증에 걸리면서 남과의 거리도
자연 멀어지고 마지막 해서는 안될 일도 저지르고 만다.
카운셀러가 하는 일이 무엇인가?
그들은 결코 어떤 해답을 주지 않는다. 나는 울면서 얘기하는데 그는 한 시간동안
고개만 끄덕인다. 나의 자라온 환경도 모르고 현재 상황도 어찌 세세히 알겠는가?
그래도 그의 눈은 똑바로 나를 쳐다보면서 진지하게 내 얘기를 들어준다.
그져 내 설움에 끄억끄억거리면서 말한다. 때론 횡설수설일 때도있다. 너무 억울해서
울고 또 울어도 울음은 끝날 줄 모른다. 비싼 돈을 지불하고 나오지만 그나마
조금 심정이 가라 앉는 듯 하다. 내 편이 되어준 그가 고맙기 때문이다.
어떤 상황의 일이 벌어졌을 때 가족이나 친한 벗이 내 편을 안 들어줄 때가 가장
괫심하다. 내 경험으로 그렇다. “네게도 잘못이 있겠지?” 라며 내 편을 안 들어주면
그가 곁에 있는 것 조차 경멸스럽다. 물론 상대방도 할 말은 다 있기 마련이다.
그러나 나는 일단 내게 가까운 사람들 편을 들어준다.
상대방을 마구 욕을 하면서 친구나 가족편이되어 응원해 준다. 나는 그래야만 된다고
생각한다. 억울한 얘기를 하면 그 사람이 정말 억울해서 하는 소리로 받아 들여야 한다.
내가 재판관이 되어서는 안된다.
네가 무엇을 잘 못했는지 물어볼 필요도 없다.
그냥 편들어 주어야 한다.
가끔씩 언니가 전화온다. 환자들과 가족들에게 시달릴 때 언니도 위로를 받고 싶은거다.
그럴때마다 나는 큰 소리로 “그것들 미친것들 아니야 언니? 어휴 넘넘 힘들었겠네.”하며
언니편이 되어준다. 전화를 끝을즈음에 언니의 목소리는 어느듯 나근나근해 있다.
살면서 가장 기분 좋은 일은 가까이 내 편이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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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랜 탄자니아 교장선생이 어제 보내온 사진입니다.
땅을 보니 너무 탐나네요. 해바라기 팜트리 그리고 옥수수
보러 가보고 싶어집니다. 하늘과 구름도 한폭의 그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