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헌영(아내 주세죽),  김단야(애인 고명자), 임원근(아내 허정숙) 이 세 사람이 많은 사람들을 놀라게 한 ‘삼인당’이라고 불리워진 사람들이다.  이 남자들의 애인 혹은 아내들을  사람들이 ,여성 토르이카’라고 불렀다.  트로이카는 원래 3을 뜻하는 러시아어인데, 세 마리의 말이 끄는 삼두마차라는 뜻이다.  이들은 전국을 무대로 돌아다니며 무산계급의 각성과 단절을 강연하여 경찰들을 놀라게했다. 이 일은 일제에 의해 금지된 사회주의 운동으로써 여섯명의 앞길이 결코 순탄하지 않을 것을 예고하는 것이었다.

박헌영과 주세죽 – 1925년 11월 말 제 1차 공산당 사건이 터진다. 이로인해 박헌영과 아내 주세죽이 체포. 다음으로 임원근과 허정숙 연행. 일경의 혹독한 고문에도 특히 아내 주세죽을 보호하기위해  “그녀는 아직 교육 수준이 낮아서 공산주의가 무엇인지도 모르고 사상 운동에 대해서는 흥미가 없소”하고 거짓말 한다. 박헌영은 완전한 미친짓 연극을하면서 경찰과 의사를 속여 아내와 극적으로조선을 탈출한다.  두 사람은 모스쿠바에서 딸 박비비안나를 출산한다. 박헌영의 움직임이 알려지면서 결국 다시 체포된다. 그가 감옥에 있는동안 주세죽은 삼인당중의 한 사람인 김단야와 결혼. 박헌영은 1985년 8월15일 해방과 함께 조선혁명 운동 역사상 가장 걸출한 인물로 추앙받게된다.  그러나 한때 박헌영의 아내였던 주세죽은 두번째 남편이된 김단야가 일제 간첩이라는 오명을쓰고 사형 당한 후 카자흐스탄 유배지로 떠나게된다. 나중에 신문보도에 옛 남편이었던 박헌영이 조선공산당 총비서가 된 것을 알게된다. 이 기사에 힘 입어 스탈린 앞으로 청원서를 냈지만 그 청원이 이루어 지지 않고 세상을 뜨게된다. 한편 박헌영은  김일성으로부터 꽃 다발까지 받으며 그의 비서였던 윤레나와 (딸까지 초청해서) 근사한 결혼식까지 올렸지만 5 년 후 미국 간첩이라는 누명을쓰고 김일성의 지시하여 총살 당했다. 그가 총살 당하기 전 마지막 소원을 묻는 말에 아내 윤레나와 두 아이를 해외로 내 보내 달라고 간청했지만 그의 소원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김단야와 고명자  –  제 1차 공산당 사건이 터질때 다행이 김단야는 소문을 미리 듣고 상하이로 도주했고  애인 고명자는 모스크바에 유학을 떠난 후 여서 피하게 된다. 모스크바에서 1년 생활 한 후, 그들은 4차까지 발족됐다가 끝내 무너진 조선공산당 재건을 위해 다시 조선으로 들어가기로 결심 한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김단야는 조선으로 들어가던 도중 다른 동지가 열차 안에서 일경에 체포된 것을 알고 다시 조선을 떠나 모스크바로 떠나게 된다. 이번에는 조선에 남아 출판 및 연락 업무를 하던 고명자가 경찰에 채포되어 남편의 행방을 실토하라는 고문에 시달리게된다.  김단야는 일본의 밀정이라는 누명을쓰고 체포되어 사형을 받게된다. 고명자는 일제 말기 친일 행적을 저질러 해방 후 조선공산당에 참여하지 못했다.

서로 손을 맞잡고 찬란한 젊음의 에너지를 독립과 혁명 운동에 쏟으며, 경성 거리를 휘젓던 삼인당과 여성 트로이카 중 허정숙과 임원근을 제외한 네 명은 비극적인 최후를 맞았다. 물론 전 남편을 죽음으로 내모는 고발대에 서야만 했던 허정숙의 삶도 행복했다고는 할 수 없을 것이다. 두 번째 감옥살이를 한 후 다른 길을 걸어갔던 임원근을 제외하고는.

임원근 허정숙 – 어제 2155번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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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창 올림픽 스케이터 타이업 그리고 튜립 사인 끝 났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