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세게 운 없는 줄리아 델리알비치의 이야기 : **지중해를 물들인 아홉가지 러브스토리
줄리아의 이야기는 조금 서글프다. 그녀는 피렌체에서도 굴지의 명문가 알비치라는 성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 집의 셋째아들과 하녀 사이에서 태어난 사생아였기 때문이다. 그녀의 어머니는 임신한 사실이 발각되어 친정집으로 보내져 서민이 사는 구역에서 자라났다. 뿐만 아니라 그녀의 어머니는 줄리아를 낳고 바로 죽었고 아버지는 얼굴조차 모르고 살아간다. 사생아가 그녀외에도 더 많았기 때문이다. 그녀를 키운 사람은 연로한 외조부였다. 그녀는 사생아였지만 약간의 양육비는 받았다.
당시 피렌체 대공의 아들인 빈센초는 장래 만토바 공작이 될 사람이었다. 그가 맞이한 신부는 에스파냐 왕의 신하로 고명한 장군 알렉산드로 파르네제의 딸인 마르게타였다. 두 사람이 성대한 결혼식을 치루고 첫 날 밤 이었는데 신부의 비명소리를 밖에서 듣게된다. 모두들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첫 날은 그렇게 지나갔지만 다음 날도 그 다음날도 아니 신혼부부의 거쳐까지도 작은 성으로 옮겨가서 노력했지만 신부는 남자를 받아들이지 않는다. 이로인해 신부는 의사의 진찰을 받아야 했는데 신부의 신체가 성생활을 할 수 없는 여자이며 당시 외과 의술로는 수술을 받아도 생명을 보장 받을 수 없다는 결론에 이른다.
당시 유럽에는 모든 결혼이 정략결혼이었기 때문에 아들에게 자손이 나오지 않으면 정치적으로 상당한 타격을 입게된다. 여러가지 힘든 상황끝에 신부는 친정에서 데려갔는데 이 사건을 로마 교황청이 관계하여 당시 성인으로서 만인의 존경을 받고 있던 밀라노 추기경 포메로가 나서서 해결한다. ‘순백의 결혼’ 후 1583년 10월30일 마르게리타 파르네제 곤차가는 마우라 루체니아 수녀로서 파르마 수녀원에 들아가 영원히 속세를 떠났다고 한다.
그러면 왜 여기 줄리아가 등장해야 하는가?
빈첸초가 다시 신부감을 찾는 과정에서 빈첸초와 마르게리타의 결혼 파탄이 빈체초 쪽에 문제가 있을 수도 있는 것은 아닌가?라며는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이 있었고 빈첸초를 시험대에 올려놓고 남자 구실이 제대로 되는지 결과를 보기로 한다. 이때 평민과 실험해보기는 안되니까 줄리아가 희생물이된다. 처음 줄리아가 피렌체 중심가에 있는 호화로운 알비치 가의 저택에 불리어가서 고운 옷을 입고 머리를 단장 할 때까지는 아름다운 꿈을꾸면서 가슴이 부풀어 있었다. 그러나 자신이 빈첸초의 성적 대상으로만 불리워갔다는 사실에 너무나 실망하게된다. 그녀 나이 21살 때였다.
당시 서민끼리의 결혼은 지참금이 없이도 결혼 할 수 있었지만 알비치 성을 가진 줄리아는 아무하고나 결혼 할 수가 없었다. 잠자리를 제공해 주는 조건으로 금화 3천 스쿠도의 다른 사람과 결혼 지참금을 받을 수 있다고 말 한다. 빈첸초와의 잠자리를 거부하면 그나마 조금 받아오던 양육비도 끊길 것이니 모든 분노와 굴욕감에 치를 떨었지만 거절 할 수 없는 노릇이었다. 결혼 못해 수녀원에 들어가면 고액을내고 수녀원에 들어오는 수녀들의 몸종이 되어야했으니 당시 수녀원은 참으로 기구한 운명의 여인들이 가는 곳이었다.
다행히 줄리아와 빈첸초는 일을 잘 치루었고 남자로서의 빈체초가 확인됨과 동시에 서둘러 화려한 두번째 결혼실을 올리게된다. 줄리아는 단 두 번의 잠자리로인해 임신까지 되었고 건강한 사내 아이를 낳는다. 아이는 태어나자마자 바로 만토바에 보내졌으니 이래저래 아주 운 없는 여자다.
한가지 다행이었던 것은 베디치에서 지참금으로 평범한 사람과 결혼 할 수 있었다. 돈 3천 스쿠도 때문에 수녀를 면 한 것이 마지막 행운이라나 할까? 시끼들이 나쁘다. 여자를 돈 받고 사가다니. 나뿐눔들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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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저녁에 빅토리아여성회 웍샵이 유현자 회장댁에서 있었다. 임원 전원과함께 저녁을먹으면서 6년간 지내온 빅토이라여성회가 앞으로 더욱 더 잘 운영되기 위한 웍샵이었다. 이 일을위해 일부러 에드먼턴에서 매우 적극적으로 일하고 있는 애드먼턴 여성회 노신옥 이사장님께서 오셔서 처음여성회를 조직할 때의 심정을 얘기를 사심없이 얘기해 주심은 정말 감동이었다. 13년 째 이 일을하고 있는데 죽을때까지 여성회일을 돕고 갈 것이라며 힘주어 말한다. 정말 대단한분이다. 여성들이 낯 설고 물설고 언어다른 곳에서 생활할 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기위해 조직된 애드먼턴 여성회가 캐나다 전역을 아우르며 활기차게 움직이고 있다. 빅토리아에도 유현자회장이 많은 희생을 해 가면서 열심히 일하고 있음이 자랑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