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머랄드빛 바다 : “제가 왕녀인척 하겠습니다” **지중해를 물들인 아홉가지 러브스토리
1520년 남이탈리아 칼라브리아 지방 작은 어촌 카스텔라에 조반 디오지니 갈레니라는 아이가 어부의 아들로 태어났는데 마을이 투르크 해적에게 습격당했을 때 포로가 되어 콘스탄티노플로 끌려가 노예가 된다. 갈레니는 자파라고 하는 해적선의 선장에게 팔린 후에 채찍을 맞으며 노 젓는 일을 하다가 자파의 눈에 들었고 자기 딸과 결혼해 달라는 부탁을 받는다. 그리스도교를 버릴 생각이 없었던 그는 승낙을 미루었지만 1년 후에 자기를 죽이려던 다른 노예를 정당방위로 살해하는 사건이 생긴 후에 선장의 딸과 결혼을 하고 이슬람으로 개종하게된다. 21살의 그는 이름도 우르그 알리로 바꾸게된다.
1559년 봄에 이탈리아 니스 근처 빌라프랑카에 있는 사보이공국에 투루크해적 선대가 쳐들어왔고, 해군이 없던 사보이 공국은 노련한 전투 기술을 갖고 지중해를 누비던 투르크해적들에게 대패를 하고 가신(家臣) 40명과 병사 100명 이상이 해적에게 포로가 된다. 해적 우두머리는막대한 몸값 지불을 댓가로 요구하고 프랑스 왕국 왕녀 출신인 사보이 공비 마르그리트와 접견을 청한다. 사보이공은 술탄의 신하라고는 하지만 해적 출신에게 자기의 아내인 프랑스 왕국의 왕녀를 접견시킬 수 없어 고심을 할 때, 피앙카리에리 백작의 부인이 “제가 왕녀인척 하겠습니다.”고 자청하게된다.
용기 있고 지혜로우며 아름다운 피앙카리에리 백작 부인이 왕녀를 대신해 적국 투르크의 대장 우르그 알리를 만난다. 부인이 접견장에 들어섰을 때 투루크 제국의 술탄으로 보일 정도로 세련된 해적 우두머리 우르그 알리가 들어온다. 부인은 긴장되어 무슨 말을 했는지 기억도 없지만, 남자들 세계의 일로 부인들의 신변에 해를 가하면 안 된다는 말이 귓전에 남고, 예상 외로 정중한 대접을 받고 무사히 돌아온다.
피앙카리에리는 위기를 모면했으나, 어이없게도 단 한번 보았을 뿐인 그를 사랑하게 된다. 자신의 사랑을 지중해의 깊고 푸른 바닷물처럼 고이 간직하고 있다가 우르그 알리에게서 옷감을 전해받은 그날 밤, 터질 것 같은 기쁨에 젖어 운다. 사랑은 나이를 초월하고 신분도 지위도 명예도 망각하게 만드는 묘약임을 웅변하는가보다
우르그 알리는 접견에 대한 감사로 백작 부인에게 에메랄드와 당초무늬로 금장식된 훌륭한 목걸이를 선물로 주고 갔는데 사보이공은 천민 출신치곤 취미가 고상하다고 비웃으며 부인에게 오늘의 포상으로 준다고 말한다. 포로가 되었던 140명의 남자들이 돌아오고 다섯 척의 투르크 해적선이 바다에서 사라져 갈 때 부인의 가슴 속에서 무언가 뜨거운 것이 북바쳐 올라오게된다.
시간이 지나가면서 피앙카리에리 백작부인은 우르그 알리를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느끼는데, 부인은 자신의 마음을 어찌할 수 없음을 알고 고뇌한다. 자신이 왕녀가 아니란 걸 모르는 사람에게, 이슬람교를 믿는 천한 어부 출신의 해적 우두머리에게, 서른 살이 넘어서 소녀같은 사랑의 감정이 생겨날 리가 없다고 스스로 비웃어 보지만 혼자 있을 때는 상자 속의 목걸이를 열어 보곤 한다. 그리고 사보이 궁정 안에서 사람들이 그 때의 일을 이야기하면서 우르그 알리가 천민 태생이라는 것만을 웃음거리로 삼는 것을 보고 부인은 남편에게조차 마음이 떠나게된다.
사보이공이 재정을 쏟아 세 척의 갤리선을 만들고 보복을 생각하고 있을 때 우르그 알리가 이집트 알렉산드리아 항구의 수비 사령관이 됐다는 소식이 사보이궁정에 날아온다. 사보이공은 망연자실하게된고 같은 해 여름에 베네치아 거상 한 사람이 백작 부인을 은밀히 찾아와 말한다.
“부인께서 3년 전에 만났던 우르그 알리는 부인이 프랑스 왕녀가 아니란 걸 알고 있습니다. 그 분이 제게 묻기를 그 때 왕녀행세를 한 사람이 누구냐 하기에 피앙카리에리 백작 부인 마리아 데 곤디라는 분이라고 했더니, 대담하고 용기있으며 아름답고 고상한 분이라고 하면서 이 선물을 전해드리라고 했습니다. 운임까지 동봉하면서요.”
우르그 알리가 백작 부인에게 선물한 것은 녹색과 금색과 은색이 미묘하게 섞여 있는 멋진 비단이었는데, 햇빛의 각도에 따라서, 아침 점심 저녁 시간에 따라 다른 색으로 보이는 환상적인 것이었고, 부인은 모두 나가게 한 뒤 비단 위에 에메랄드 목걸이를 올려놓고 서른 세 살의 부인이 소녀처럼 울고 또 운다.
우르그 알리는 알렉산드리아 수비 사령관이 된 일 년이 채 안되어 큰 전공을 세우고 리비아 북서부 트리폴리의 장관이 되었고, 6년 후인 마흔 아홉살에 알제리의 장관으로 승진한다. 백작 부인은 자연스레 그의 소식을 듣게 되고, 자신의 마음을 바친 사람의 출세를 진심으로 기뻐한다.
그 후 <레판토 해전>으로 알려진 유럽 역사상 유명한 해전으로 투르크 해군이 대패하면서 사령관이 전사하고 3만 명의 전사자가 생기는데 우르그 알리의 함대만은 큰스탄티노플로 살아서 퇴각한다. 다시 5년의 세월이 흐른 후 남편도 죽고 백작부인은 사보이 궁정에서 떠난다. 공비가 타계한 것을 빌미로 모든일에서 떠나 바닷가의 영지에 은거하고 살아가면서 투르크 함대의 총사령관이 된 우르그 알리가 투르크 해군의 전력을 다시 회복시켰다는 소식을 들으며 행복해했다.
백작 부인은 그해 겨울에 우연히 걸린 감기로 숨을 거두었고 우르그 알리는 11년을 더 살았으며 투르크 제국 최고의 영예에 빛나는 인물로 세상을 떴다. 사보이궁정의 접견장에서 잠깐의 만남만으로 평생을 기억할 수 있었던 두 사람의 사랑, 푸른 바다처럼 싱싱하고 영원한 전설적인 이야기로 우리들의 가슴을 촉촉히 적셔주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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