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니체티의 오페라 ‘파리시나’의 음반 커버.

** ‘파리시나'(Parisina)는 게타노 도니체티(1797-1848)가 작곡한 3막의 비극(Tragedia lirica)이다. 대본은 도니체티와 콤비인 당대의 펠리체 로마니(Felice Romani: 1788-1865)가 조지 고든 바이론(George Gordon Byron: 1788-1824)의 서사시 ‘파리시나'(1816년)를 바탕으로 완성했다.

 

파리시나 후작 부인의 사랑      ** 지중해를 물들인 아홉가지 러브스토리

파리시나 말라테스타의 원래 이름은 라우라 말라테스타였다. 그러나 파리시나 말라테스타라는 이름으로 더 잘 알려진 여인이었다. 파리시나는 1404년에 태어나서 1425년에 21세라는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난 여인이다. 파리시나의 어머니인 루크레치아 오르델라피(Lucrezia Ordelaffi)는 파리시나를 낳은지 며칠 후에 무슨 영문인지 친정 아버지인 체코 오르델라피에 의해 독살되었다. 태어난지 얼마 안되는 파리시나는 그로부터 리미니에 있는 삼촌의 집에서 성장했다. 파리시나는 1418년, 즉 그가 14세의 소녀일 때에 페라라의 영주인 니콜로 3세와 결혼했다. 니콜로는 첫째 부인이 2년 전인 1416년에 역병에 걸려서 세상을 떠났기 때문에 재혼을 해야만 했었다. 니콜로와 첫째 부인 사이에는 자녀가 없었다. 정식 결혼은 하지 않았지만 니콜로3세가 평소 가장 아끼던 여인에게서 난 세 아들이 있었는데 그 첫 아들이 우고였다. 니콜로3세는 잘 생기고 총명한 우고를 자신의 뒤를 잇게 할 생각으로 그에 어울리는 대우를 했을 뿐더러, 독일의 신성 로마 제국 황제에게 부탁해 백작의 칭호를 수여 받도록 했다.

1424년에 파리시나는 그동안 떨어져 지냈던 가족들을 만나보기 위해 리미니와 체세나를 방문하였다. 이때 남편인 아쪼 공작은 파리시나의 무사여행을 위해 아들 우고와 함께 여행하도록 했다. 따지고 보면 파리시나는 우고의 어머니가 되며 우고는 파리시나의 의붓 아들이 되는 셈이었다. 그런데 파리시나는 의붓 아들 우고보다 겨우 한 살 많았다.  바람둥이 남편인 니콜로3세는 총각때부터 여성 편력이 심했고 가는 곳 마다 여자들과의 염문을 뿌리고 혼외 자식도 11명 아나 낳았다. 젊은 나이에 시집온 자존심 강한 파리시나는 남편으로부터 받지 못하는 사랑을 의붓 아들 우고로부터 찾고자 했던 것 같았다. 파리시나는 사람들의 눈을피해 적막한 밤 아들을 불러 책을 읽게하고 사랑을 고백한다. 세상에 비밀은 없는 것 2년동안 몰래한 사랑이 어느날 하녀중 한 명이 알게됐고 니콜로 공작에게 고자질 한다. 결국 니콜로 공작은 파리시나와 우고가 침대에서 함께 있는 장면을 목격했다. 니콜로는 즉시 두 사람을 성채의 감옥에 가두도록 하고 며칠 후에 두 사람을 모두 참수형에 처하도록 명령한다.

아들 우고는 아버지 앞에 무릎을 꿇고 용서를 빌었으나, 목숨은 구걸하지도 않았다. 파리시나는 자신이 모함 당하고 있다고 남편을 만나게 해 달라고했지만 니콜로 공작은 아들은 만나주었지만 아내는 결코 만나주지 않았다. 우고는 사제를 맞이하여 참회도 하고 죽음을 기다렸지만 파리시나는 참회를 거부하고 우고를 위해 기도해 달라고 말 할 뿐이었다. 감옥에 갇힌 사흘 째 되는 날 밤 두 사람의 연인은 각각의 감옥에서 참수당했다. 우고는 아무 말 없이, 파리시나는 연인의 이름을 부르면서. 피에 물든 유해는 씻겨진 다음 후작 부인과 백작의 예복이 입혀져 성 안뜰에 나란히 놓였다. 핏기 없는 두 사람의 얼굴은 때마침 달빛을 받아 대리석으로 된 묘지의 조각처럼 창백했다. 두 사람의 시체를 감싸는 두툼한 하얀 비단까지도 공포분위기를 만들어놓았다. 사랑이 무엇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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