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수영장에서 수영 하고 있는데 내 곁에서 수영하던 할아버지가 “손자 손녀 있어요?”한다. 그 말을 듣는순간 벗은 내 모습을 보는 사람들이 나를 틀림없이 ‘할머니’로 보는구나 싶어 속으로 피시식 웃음이 난다. 당연 그렇다. 칠십을 열 한 달 남겨 놓았는데 어쩌라구. 그래도 옷을 챙겨입고 머리도 손질하고 줄 진 목도 좀 가리고 외출하면서 혹시나 할머니 모습이 감춰지나 싶어 거울을 열 두 번 더 쳐다보곤 한다. 이 할아버지는 수영 중간 즈음에서도 내게 또 말을 건넨다. 대답하려면 입 속에 물이 들어가고 코로 물을 들여마시게 되는데 별 할배 다 보았다. 자기는 손자 손녀가 모두 네 명이라고 자랑인지 푸념인지 말한다. 왜냐면 자기 마누라는 네 명 손자녀 때문에 골치를 앓는단다. 너무 시끄럽고 정신이 없다면서. 그러니까 나 처럼 손녀 딱 하나면 좋잖아요? 말하니 “그러게요. 그게 마음대로 되겠수?”라 머리를 극적거린다. 할배가 자꾸 말을 시켜서 다른줄로 옮겨 수영을 했다.
잠시 허푸허푸 수영을 하고 얼굴을 들어 올리니 내 곁에서 젖 가슴을 가리지 않은 여자가 수영하고 있다. 이건 또 뭐지? 유방이 처녀처럼 봉긋하고 탱탱한 젊은 여자다. 수영장에서 이렇게 네이크로 수영해도 되나싶어 잠시 어리둥절하다가 그녀를 자세히 살펴보니 두상은 남자다. 그리고 아래도. 아이구머니나. 그러니까 수영복 밑에만 입어도 되는 남자 아니 여자? 참 혼돈된다. 저 사람은 인생 살아가기가 얼마나 힘들까싶다. 태생이 그런데 어쩌러구? 이런 사람들에게 우리는 함부로 말하고 수군거리지만 이런 모습이 그의 잘못일까? 그져 모르는 척 안 본 척 그렇게들 해 주면 좋을 듯 하다.
수영을 마치고 탈의실로 가서 옷을 입는데 쪼그리쪼그리한 백인 할마시가 내 머리를 보더니 “Wow, I like your hair, curly…”란다. 아직 빗 질도 하지 않고 동글동글 파마 머리인데 그것이 아주 멋지다고 소리친다. 이 할머니는 너무 말라서 껍질과 몸통이 따로논다. 완전 한풀 벗기면 살 가죽이 함께 쭈루루 따라 나올 것 같다. ‘아이고 기름기 좀 잡수셔야지. 원 저렇게 겉 살과 안 살이 붙어있지 않으니 얼마나 위험할꼬? 내 걱정과는 달리 그래도 이 할매의 모습은 매우밝고 명랑하다. 내게 한 두 마디 수다를 떨더니 11시에 있는 Aque Exercises 하러 종종 걸음으로 들어간다.
집에서 딩굴면 이런 풍경들도 볼 수 없는데 시간 나면 무조건 밖으로 나가야한다. 운동도하고 사람들도 만나고 신선한 바람도 쐬고 일거 삼득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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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요’ 그림 머리올림.
튜립이 피기 시작하는데 낮에 사슴이 문안왔다. 창 밖에 무엇이 서성거려서 나가보니 사슴 두 마리가 튜립 근처에서 얼쩡거린다. 3년전에 사슴의 습격으로 튜립 몽땅 도둑맞아서 집 전체 울타리를 쳤었다. 그 동안 사슴이 한 번도 들어오지 않아 이맘때면 튜립감상하느라 즐거웠는데 이게 우짠일인고. 내 소리에 놀란 사슴이 뛰너가는 쪽을 바라보니 우리집 한창 밑에 집에서 우리와 자기집 경계울타리를 다 뜯어내어새로 하느라 벽이 허물어져 있다. 하이고, 새 울타리가 만들어질 때까지는 사슴 방문 막을 길이 없게됐다. 혹 오늘 밤에라도 도난 당할까싶어 사진이 한 컷 찍어두었다.